Home Mass 연중 제33주간 목요일(1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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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묵시 5,1-10 루카 19,41-44

       

      주님의 길을 걷는 사람

       

      누군가를 평가하려는 의도는 없다. 전임 교황님인 요한 바오로 2세는 어느 종교, 어느 나라를 초월하여 평화의 사도로 불렸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그분의 삶이 그것을 증명하였기 때문이다.

      한 가족이 화목하고 안락하며 평화롭게 지낸다는 것을 그려볼 때, 그 모습은 서로간의 사랑은 물론 자신의 자리에서 지켜야 할 부분에 최선을 다할 때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기능적인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양보와 받아들임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인정이다. 이것으로 세상에서는 줄 수 없는 평화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 부모는 일관적인 모습으로 자녀들을 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같은 소리를 낼 수 있으며,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자세와 더불어 중심에 주님이 함께 하셔야 가능한 일이 된다.

      부모 가운데 엄격한 부분이 있다면 다독이는 모습도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야단을 칠 때나 칭찬을 할 때나 부모의 태도와 지향은 같아야 한다. 그래야 혼돈이 없어지고, 누구를 대하든지 같은 모습으로 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가슴아파하신다. 그분이야말로 모든 이의 아버지요, 형제요, 가족이었다. 차별이 없으며 한결같은 그리고 무한한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대해주셨다. 혈연, 지연, 학연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넓은 세계로 우리를 확장시켜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기에 살해되신 어린양은 자신의 피로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속량하시는 분으로, 마지막 날에 봉인을 펼치시는 이로 나타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이 무엇인지 새겨보자. 예수님께서는 쓴 이야기가 아닌 슬픈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다. 그분 친히 찢어지는 마음을 토로하시는 것이다. 안타까움을 이야기하시는 것이다. 주님의 날에 대한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백성을 보시고 아파하시는 것이다. 하느님의 진노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갖추지 못한 백성들이 초래한 결과를 안타까워하시는 것이다. 하느님에게서 벗어나는 백성의 모습은 모든 이들을 형제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주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일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시기에 그들이 돌아서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오늘 또한 느껴야 한다. 이것은 이미 그들과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우리가 바라보지도 깨닫지도 못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시는 것이다.

      주님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다른 특별한 공덕을 쌓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주님의 계명을 간직하고 세상에 주님의 나라와 그분의 평화를 심고 자라게 하는 사명을 받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우리의 눈을 닫지 않고,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의 선물을 간직하며 살아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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