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30주일(전교 주일)(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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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집회 35,15-17.20-22 2티모 4,6-8.16-18 루카 18,9-14

      기도의 기초인 겸손

      고해성사를 거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인간에게 죄를 고백한다는 이유라고 한다. 그런데 그것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또 하나는 부끄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이 그를 비겁하게 만드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또 하나는 매일 같은 상황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겸손한 자세로 낮아져야 한다는 가르침인 동시에 주님께 더욱 의탁해야 함을 말해준다. 겸손한 사람은 어디에서도 주님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이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일들과 타인이 나를 인정할 수 있는 일들이 같은 비중으로 나타난다면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것은 과시도 아니며, 자랑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증언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 자신의 삶이 하느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똑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인 문제이기에 우리는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오늘 복음에서 세리와 바리사이의 모습을 통하여 조금 더 깊은 묵상을 얻어낼 수 있다. 자신이 행한 모든 것에 복이 겨워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 속에서 옥의티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누군가와 비교하는 삶의 모습이다. 그와 반대로 세리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낙심하거나 걸려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비를 청하면서 자신의 죄와 환경에서 일어서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당한 차이를 가져다준다. 단순한 겸손을 넘어서, 경외심으로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는 은총과 하느님으로부터 내려지는 의화의 은총을 살아가는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유에서처럼 바리사이와 세리가 흑과 백의 모습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바오로 사도의 기도를 통해서도 나 자신의 신앙고백과 마음가짐을 되새겨 보게 된다.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이 모든 것은 바오로 자신이 고백하듯이 사람들은 떠나가거나 변하지만,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겸손하여 이런 기도를 드리게 된 것이 아니다.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와 은총의 힘을 깨닫고 꾸준히 달릴 길을 다 달려 믿음을 지킨 결과로 겸손의 덕을 쌓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삶, 곧 기도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누군가를 믿는다고 할 때는 나 자신이 겸손한 자세가 되어야 함을 먼저 준비해야 한다. 그러기에 이런 자의 기도는 이로운 기도로 하느님께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바치는 모든 기도의 내용을 곰곰이 살펴보면, 하느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어떻게 낮추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우리를 지상에서 저 높은 하느님 나라에로 이끌어 주는 통로가 되고 있으며, 이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신앙의 선조들을 본받아, 하느님께 나아가게 된다.

      이제 짧게 교만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일곱 가지 죄의 뿌리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것이 교만임을 알아야 한다. 교만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가장 추악한 모습을 만들어내며, 하느님 앞에서는 동등해지려는 모습으로 수없이 나타났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죽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의 삶이 기도가 되고, 그것으로 인하여 타인에게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된다는 것을 느끼면서 더욱 주님께 겸손하게 나아가는 시간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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