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30주간 월요일(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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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에페 4,32-5,8 루카 13,10-17

       

      위선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기

       

      나의 삶은 진실 된 모습으로 살아가는가? 아니면 누군가를 의식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감추면서 살아가는가? 살아보면 후자의 모습은 귀찮고 힘든 여정을 계속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일까? 그냥 있는 대로의 모습 속에서 더욱 인간미와 친근감과 해학이 묻어 나는가보다.

      오늘 복음에서 18년 동안 허리가 굽어 몸을 조금 더 펼 수 없던 여인을 만나게 된다. 허리에 대한 통증은 본인도 있었던 관계로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그녀가 병에서 자유로워지고, 똑바로 서서 즉시 하느님을 찬양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대답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당장 눈앞에 보이는 예수님께 얽매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기에 이 여인이 병마에서 자유로워진 후의 모습은 대단한 모습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회당장은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었다고 예수님께 분개하여 사람들을 선동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의 교묘한 법망 빠져나가기를 질타하시면서 진정 중요한 사람에 대한 가치를 알려주신다. 이렇게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오늘 가슴 깊이 담아보는 것이다.

      그런데 일상생활 속에서 느껴지는 갈등은 참으로 어렵게 느껴진다. 피정이나 좋은 교육을 받고 나오면 그것을 유지하려고 노력을 기울이지만, 막상 일상의 벽에 부딪히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느낌과 비슷할 것이다. 학창시절 시험기간 동안에는 머리도 감지 않았고, 미역국도 먹지 않았던 모습이 새롭게 느껴진다. 이렇듯 정성을 들이지만 왜 우리는 쉽게 무너지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바오로 사도가 말하고 있듯이, 불륜, 더러운 일을 하는 자, 탐욕을 부리는 자, 추잡한 말이나 어리석은 말이나 상스러운 농담으로 살아가는 모습 때문이다. 오히려 감사의 말만 하면서 성도의 모습에 걸맞게 살아가라는 것을 되새겨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쉽게 합리화하고, 편안한 것을 추구하면서, 얕은 위안을 추구하고, 어려움을 피하고 싶은 유혹들 때문에, 또 다른 위선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토마스 모어가 자신의 첫 영어 작품에서 ‘intergrity(성실성)‘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것은 그 자신의 모든 삶 속에서 나타나게 된다. 정직한 삶을 뜻하면서,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작품과 삶을 살아간 대표적인 16세기의 성인이 오늘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온다.

      화답송에서는 아주 간단하게 노래하고 있다.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리라.” 이것이 우리의 진실 된 모습을 드러내며, 더욱 빛을 더해주는 모습이라는 것을 우리도 같이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특별하게 선행을 할 일도 없어질 것이다. 그저 우리의 삶이 악을 피하고 주님의 모습을 그리워하면서,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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