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3주일(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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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이사 8,23-9,3 1코린 1,10-13.17 마태 4,12-23

       

      그리스도의 빛을 껴안기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 는 말은 요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다보면, 몹시 고생을 하는 삶도 좋은 운수가 터질 날이 있다는 말이다. 그를 위해 준비된 날을 기다리며 살아간다는 희망을 새롭게 되새겨 본다.

      또한 ‘그리되려고 이렇게 되었다.’는 표현을 쓸 때도 있다. 예언자를 통하여 전해진 모든 말씀들이 이루어지려고 그리스도께서 어둠 속에서 빛이 되셨다는 것을 통감하면서 우리의 삶의 방향과 목적지를 점검해 볼 시간이 되었다.

      ‘그렘린’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작고 귀여운 털복숭이 생명체다. 그런데 물에 젖으면 많은 복제품들이 생겨나고 정오가 지나면 그들은 더 이상 귀여운 존재가 아닌 무서운 존재로 변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빛을 싫어하는 약점이 있다.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대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큰 빛이 비춰지게 된다고 듣게 된다. 이 빛이 오늘의 주제다. 그리고 세상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보았다면 우리는 그렘린처럼 빛을 피해 달아나는 것이 아닌 빛의 자녀로서 그 빛을 껴안아야 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 속에는 이런 작은 그렘린들이 있다. 그것은 가장 새로운 것과 큰 것을 위해서, 가장 빠른 것과 유행적인 것을 위해서 만족할 줄 모르는 욕구들이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이 욕구가 넘쳐나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보호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사랑의 공동체로 불러주신 하느님의 뜻을 파괴하고 황폐화 시킬 수 있는 무서운 그렘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의 것을 탐내는 것의 뿌리에는 자신의 노력을 회피하는 게으름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한 무수한 명예 훼손과 무절제한 판단들이 넘쳐나는 것이 된다. 그 시간에 자신을 위한 모니터링을 하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가 외부로 신경을 쓰는 만큼 나 자신의 모습은 황폐해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가 하나의 빛을 통하여 다양한 빛을 내는 사랑의 공동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나의 몫으로 정해진 것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바오로 사도의 모습을 통하여 확인하게 된다. 자신의 직무를 제대로 깨닫고 그 선을 넘지 않으며, 서로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코린토 인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분열의 주요 원인은 자신의 몫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모두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자신의 몫을 살아간다는 것은 다양한 모습 속에서도 일치와 화합을 지향하게 된다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

      하느님의 숨결로 생명을 얻은 사랑스러운 피조물의 빛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세상의 움직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시대의 우리에게 필요한 노력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삶에는 빛이 비춰지게 된다는 것을 굳은 믿음으로 지켜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를 계속 유혹하는 것에서 자신의 빛을 잃어버리지 않고 준비된 삶을 서로서로 일치하며 살아간다면 그 어떤 것들도 주님께서 주신 빛을 빼앗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실천하는 한 주간이 되어보자. 제자들을 하나하나 불러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 자신도 늘 불러주시는 주님의 빛 속으로 걸어가자. 때로 그것은 내 삶의 오랜 습관에서 벗어나는 힘겨운 노력이 되더라도 빛을 피해 숨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 장벽으로 서로에게 분열이 있었다면, 오늘부터 그 벽을 허물고 주님의 빛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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