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29주일(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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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이사 45,1.4-6 1테살 1,1-5 마태 22,15-21

       

      하느님의 법에 중심잡기

       

      우리가 속해 있다고 생각되는 단체의 주인은 누구인가?

      어떤 대립의 구도나 갈라진 상황들이나 첨예한 논쟁에 대하여 우리의 입장은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는가? 우리가 오늘 듣게 되는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라는 표현을 어떻게 적용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이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구분하신 하느님의 것과 카이사리의 것의 의미를 깨닫고 있는가?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은 원래 동맹적인 관계는 아니었지만 예수님을 잡고 싶어서 연합을 이루게 된다. 그런데 난해한 문제로 하나의 대답을 선택하게 된다면 예수님을 붙잡으려 다가선 그들의 질문에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십니다.”라고 말하고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정말로 진실하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친 분을 왜 처벌하려고 하는가? 이유는 아무도 꺼리지 않는 태도다. 신분에 따라 사람을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였다. 어쨌거나 예수님이 침묵하거나 하느님의 왕국에 대한 말을 하거나 걸려들게 마련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사악한 의도를 아시고 그들의 책략에 빠지는 대신 더 높은 단계의 사안을 꺼내신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있어서 극히 중대한 것으로써, 우리 삶의 중심에 복음의 증인으로써 그리고 복음을 제일 첫째 자리에 놓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하신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삶에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자리 잡기 위하여 잘못된 이해를 벗어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 어디에도 하느님의 법이 적용되지 않는 곳이 없으며, 하느님의 관심밖에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복음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임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에서 벗어난 부분도 없고, 그분의 복음의 요구들로부터 우리의 삶이 떨어져 나갈 수도 없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증거자로 살아가기 위해 하느님의 법에 중심을 잡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제 바오로 사도가 우리에게 말하는 의미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여러분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노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희망의 인내를” 살아가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세금은 어찌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 나라의 시민이라는 것을 되새겨주시면서 또한 이 세상에서도 살아가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세상의 권력에 지지하는 것도 복음의 가치에 견줄 만큼 중요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국 세금을 내는 것은 죄스러운 행위가 아니며, 우리의 신앙인으로써의 의무를 부정하거나 타협하는 것도 아니며, 하느님 나라의 모습에 대립되는 것도 아님을 말씀하신다. 대신 이 두 가지가 상충될 때에는 우선권을 언제나 하느님께 대한 충실함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행위와 말로써 복음의 가치를 증거 해야 할 때가 오면 그의 신앙을 타협하기 보다 목숨을 내어 놓은 토마스 모어 성인의 예를 기억하면 좋을 것이다. “나는 왕의 좋은 종으로 죽지만 하느님이 첫째 자리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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