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29주간 화요일(10월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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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에페 2,12-22 루카 12,35-38

       

      예수님 앞에 설 준비

       

      신학교에 입학 면접을 할 때,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걱정을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당연했다. 그 동안 내가 신앙적으로 준비된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니며, 누군가 결정권자 앞에서 나 자신을 발표해본 경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배님들과 형의 도움은 나에게 제일 중요하면서도 필요한 준비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지속되는 자신과의 싸움이 또 하나의 준비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느님 없이 살아가던 시절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관계가 가까워진 삶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가? 이것은 내가 이웃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드러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라고 사도 바오로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면 주님의 평화가 우리 안에서 활짝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모든 민족들이 하나가 될 수 있을까?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는 종교들의 일치는 이루어질 수 있는가? 적개심으로 인하여 서로에게 장벽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과 계명과 조문과 율법으로 인하여 갈라지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면, 지금 우리가 주장하거나 내세우는 것들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주님은 한 분이신데 왜 다른 입장의 표현을 살아가는 것일까? 그 가르침은 좋고 비슷한데, 그 삶의 모습이 다르게 나타난다면 그것은 주님의 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살아가지 못하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것을 하느님과 화해시켜 주셨고, 우리도 화해시켜 주셨다고 전해주고 있다. 이것은 성령을 통한 하느님의 선물로 자리 잡게 되는 은총의 삶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하느님의 한 가족이 되는 것이다.

      이런 모든 준비가 바오로 사도를 통하여 다시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우리가 어리석게 살아갈 이유는 없는 것이다. 여행을 준비할 때도, 신앙의 여정을 준비할 때도 지혜와 경험이 필요하다. 이 준비는 우리가 모르는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이 아님도 분명하다. 답을 알려주셨는데 그것을 유지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래서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받쳐들고 준비하라고 말씀해주시는 것이다. 영원한 선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현세의 어려움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순교자들을 통해서도 이미 확인한바 있다.

      오늘 나의 신조를 새롭게 재확인해보면 어떨까? 누군가 그것을 행했다면 나도 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는 것과 더불어 강요된 삶이 아닌, 나 자신에게 주어진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기쁘게 실천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모습이어야 한다. 하나하나 준비된다는 것은 바로 작은 실천 속에서 잔뼈가 다져지는 것이 아닐까? 이런 우리에게 주님의 평화는 자연스럽게 자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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