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27주간 수요일(10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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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갈라 2,1-2.7-14 루카 11,1-4

      나의 이름은?

      교회의 기둥으로 표현되는 사도들의 이름을 갈라티아서를 통하여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바오로 사도가 자신이 이방인들 곧 할례를 받지 않은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도록 하느님으로부터 사도직을 받았음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는 할례 받은 이들 곧 이스라엘 민족들 가운데에서 복음을 전하는 베드로의 위선을 꾸짖는 모습도 보여준다. 베드로는 세상의 이목에 눌려서 다른 민족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행위를 그만두었던 것이다. 그것 때문에 바르나바까지도 함께 위선을 행하게 되었다고 지적하면서, 유다인이면서 유다인으로 살지 않고 이민족처럼 살면서, 어떻게 이민족들에게는 유다인들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가 있는지를 말해준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천주교 신자라는, 가톨릭 신자라는 이름에 어울리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주님의 복음에 중심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은 시대에 따라 유연하면서도 중심을 잡아 나갈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것은 변함없는 가치를 주님에게서, 복음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상황에 따라서 변화되는 적용와 적응도 일관적인 삶의 모습을 지향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베드로 사도의 모습처럼 아직도 두려움과 중심을 잡지 못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베드로 사도에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부담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위에서 오는 어려움 때문에 공동체에 위협을 줄 수 있을 수도 있었다. 그 순간 바오로 사도의 역할을 통하여 유다인이든 다른 모든 민족들이든 모두가 똑같이 복음의 삶으로 나아가기에 합당한 규칙에 대해서 준비하게 되는 모습을 체험하는 순간이다.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을 우리가 완전하게 이해하거나 살아갈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나에게 주어진 이름, 곧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깨닫게 되었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믿음을 성장시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새사람으로서 탄생을 기억한다면, 우리도 바오로 사도처럼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 태어나는 사람임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 다마스커스에서 예수님으로 인하여 변화를 체험하게 된 바오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한다. 그것은 유다인들과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곧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의 소식이었음을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나의 모든 사도직과 예언직과 왕직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 안에 정립되어야 한다는 것을, 겸손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고백하게 된다. 이럴 때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를 삶으로 증거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이기에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의 전체 복음을 요약한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나의 이름에 맞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다시 준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것은 내 삶의 모습이 주님의 기도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거룩한 이름, 아버지의 나라가 활동하게 하는 것, 서로 용서하는 것, 우리의 매일의 필요를 기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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