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 11,25-29 야고 5,1-6 마르 9,38-43.45.47-48
보편화된 신앙인
헤리포터 시리즈를 보면 호그와트 학교에서 마법을 배우는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선생님으로부터 마법을 사용하는 법과 더불어 여러 가지 대처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배운 주문으로 실습을 하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이처럼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배운 것들을 실행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다니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 때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큰 가르침을 주신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마르 9,41). 결국 주님의 모습이 담겨진 삶은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과 더불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우러진 천국의 삶이라는 것을 맛보게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누구만의 소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주님이 되시는 분이시다. 심지어 다른 누군가에게는 크고 위대한 선생님으로 자리 잡으시는 분이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주님은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하신 분으로 고백되어지는 분이시다.
또한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말한 것처럼, 차라리 모든 주님의 백성이 예언자였으면 좋겠다는 표현이 깊이 새겨진다. 예언자의 직분이 중요한 것도 있지만 예언자적 삶의 모습을 되새겨 보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치우침 없이 한결같은 주님의 현존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뜻한다. 그러기에 편을 가르지도 않고, 우열을 생각하지도 않는 삶을 바라보게 도와준다.
미국이라는 땅에서 시민권자로 발붙이고 살아간다고 해도 어차피 이방인이라는 것과 다민족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거부할 수는 없다. 정치적인 색깔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이곳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상기하자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가 쌓아놓은 삶의 모습으로 인하여 우리의 삶의 증거물이 생겨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주님의 제자 집단에 들어있지 않다고 해서 거부하거나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면 그 사람은 주님의 제자에서 이미 멀어진 사람일 수 있다. 그리스도의 모습은 누구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로도’(마르 9,41)라는 표현으로 모든 이들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도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을 해주신다. 결국 어디에 속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아야 하겠지만 내 영혼이 그 값을 치르게 되는 순간,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될 때, 주님의 심판에서 정화된 부분의 삶을 준비해야 함을 듣게 된다.
우리는 모든 것에서 마음을 열고 존중하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되새겨본다. 심지어 내가 지은 죄와 더불어 모르고 지은 죄와 나로 인하여 남이 죄를 짓게 만든 것들까지도 깨끗이 만들어 주십사 하고 청하기도 한다.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고, 보편화된 신앙인의 삶을 오늘도 증거 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