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26주일(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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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아모 6,1.4-7 1티모 6,11-16 루카 16,19-31

      회개와 변화의 때

      살아가면서 입장을 바꿔놓고 생활하는 경우가 얼마나 자주 있는지 생각해본다. 동서양 모두 남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고 알려준 격언들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이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흔히 모든 일이 잘 되어 갈 때, 대비하고 준비하면서 더욱 겸손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 그리고 안 좋은 때가 왔다고 해도 그것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비관적인 사람이 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기 마련이다. 한편 류시찬 신부님의 글 가운데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내리막이 될 수도, 오르막이 될 수도 있다는 묵상을 되새겨 본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는 이미 탈바꿈을 했기 때문에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처음부터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겸손함을 배워야 함을 강력하게 알려주는 가르침이다. 또한 부자가 된 사람은 자신의 노력으로 이룩한 것이니만큼 그것에 대한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스스로 이룬 것이 아니기에 주변에 환원을 하면서 토양에 생기를 주어야 하는 것을 잊어서도 안 된다.

      만약 우리가 100개의 수입원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우리 동족 가운데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사람이 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10분의 1을 나눠줄 수 있는 용기와 너그러움이 바로 자신도 살게 되는 투자라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것에 집착하고 살아갔던 부자의 모습에서 타인의 존재는 사라져버렸다. 그는 자기 집 문간에 앉아 있던 라자로라는 인물을 생각에도 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우리 주변의 어렵고 가난한 사람을 찾아볼 수 있는가? 물질적인 요구를 청하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들이 일하지 않는다고 핑계를 대는 모습은 없는지 돌아본다. 최저 생계비를 보장받지 못하는 조건의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모습을 갖추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부자가 하느님께서 주신 그의 신앙과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의 순간들을 자신의 만족으로 상실하였음을 되새겨 본다. 그의 모든 부가 그의 생명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닫고 후회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 순간 아브라함의 입을 빌어 하느님의 뜻을 알려주신다.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이 말씀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면서 살아가는 대상이 모든 세대 모든 민족에게 미치는 계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모세와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심은 당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의미를 깨닫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우리가 변화와 회개의 삶을 살아가는 이유와 근거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선으로 악을 이겨내는 싸움을 통하여 자신에게서 벗어나 하느님과 이웃을 통한 자기완성으로 나아가라는 초대다. 이로써 우리도 아브라함과 라자로와 모든 성인들과 함께 하느님 나라의 잔치상에 앉게 될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나무랄 데 없이 계명을 지키십시오.”(1티모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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