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25주일 (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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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이사 55,6-9 필리 1,20-24.27 마태 20,1-16

       

      한계가 없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

       

      ‘한 수 위’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될 때, 그보다 더 한 표현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우리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의 표현처럼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는 표현도 맞을 것이다. 어디든 전문가나 달인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누구도 자신의 처지를 자랑할 수는 있지만 최고라고 우길 수는 없지 않을까? 어쨌든 우리와 전적으로 다른 드높은 경지에 계시는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우리 곁에 내려오셨다는 것도 신비이며 은총이지만, 결국 그분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 위에 드높기에 우리와 같지 않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바라보게 된다.

      이것을 정확하게 표현해주는 바오로 사도의 편지를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자신이 어떤 처지에 놓이든지 아주 담대하게 자신의 전체 몸을 동원해서 그리스도를 찬양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놀라운 표현이다. 우리가 입으로만, 발로만, 손으로만, 머리로만, 생각으로만, 마음으로만 등등으로 나눠져 있다면, 바오로 사도는 이미 통합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게 된 이유는 그의 삶이 곧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이 표현은 또한 혼인문서에서도 나타나는데, 결혼이라는 것이 삶으로 동질화된 결정이라는 표현에서도 그것을 발견하게 된다. 즉, 나에게 더 좋은 것을 선택하라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겠지만, 그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육신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증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완벽하게 우리를 지탱해주는 말씀과 표지들이 있는데, 왜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보고 들으면서도 그분의 모습대로 닮아가지 못하거나 어려워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의 제한적인 생각과 말과 행동 때문일 것이다. 나도 모르게 자리 잡히게 된 이런 부정적인 에너지가 내 삶의 궁극의 에너지를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회의 단체 가운데 어떤 지도자 혹은 책임자를 선택하는 문제에 있어서 쉬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규정에서 벗어나지 않고 꾸준히 충실하게 그리스도의 정신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은 하느님과 주님의 뜻보다는 다른 취미나 친목에 더 큰 관심을 갖고 나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면, 믿음은 후자의 사람들 속에서도 우선적인 것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 속에서도 주님께서는 이미 활동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그것을 깨닫고, 받아들이며, 인정하기에는 너무 나약할 수 있지만, 최후의 순간에, 마지막 순간에 등록하는 학생 같은 느낌이 들 수 있다. 물론 속은 타지만 그는 자신의 일을 나름대로 충실하게 행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상황에 맞는 지도자의 선택에 있어서 제외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공정해보이지 않는 상황처럼 놓여 있는 상황을 너그러운 포도밭 주인의 비유에서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이 계약한 것은 하루 일에 대한 하루의 대가를 받게 되는 것이었다. 더 받고 덜 받는다는 생각은 인간적인 계산에서 비롯된 것인데, 실상 처음에 온 사람들은 그 자체로 더 깊고, 충만한 삶의 가치를 깨닫는 것과 주인의 밭에서 주인과 함께 일할 수 있게 된 동료의식으로 더욱 기뻐해야 한다는 것을 빼앗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어떤 특권적인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하느님 안에서도 똑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제한적이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믿는 이들의 공동체는 어떤 조건에 따라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주님을 알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기쁘게 맞아들이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새롭게 되새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욱 자주 그리고 쉽게 주님을 마주할 수 있는지를 서로 격려하면서 나아가야 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미 자신의 삶 속에서 주님의 놀라운 은총을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놀라운 은총에 힘입어 언제든 어디서든 주님의 천사를 받아들이듯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겸손한 어린이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 때 비로소 지금껏 들어왔던 계명과 교리와 복음의 진리의 참 맛을 충만하게 체험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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