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25주간 금요일(9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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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코헬 3,1-11  루카 9,18-22

      내가 보고 있는 예수님, 나를 보시는 예수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정치, 사회, 문화, 경제, 기타 등등 모든 부분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내 삶의 모든 부분 속에 담겨진 과정과 결과들을 알 수 있을까? 그 답은 하느님께 달려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우리에게 어울린다. 왜냐하면 내가 내 인생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이 ‘나의 구체적인 동의, 결심’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흔히 장기간 성지 순례를 계획하였다고 했을 때, 여기에도 세 가지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시간 동안 다녀올 수 있는 경제적 여유, 그리고 시간과 부르심이 그것이다. 실상 내 생활의 모든 부분이 이렇듯 한 가지 요인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을 나도 조금은 바라볼 수 있게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제자들에게 물어보신 예수님의 신원에 대한 질문을 나에게 던진다면? 예수님은 과연 나에게 어떤 분이신가?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부르고 있는가?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그리스도라고 대답하지만 왜 예수님께서 구원을 가져다 주셨는지 이해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완전한 이해와 예수님을 통한 구원사업의 완성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요즘 세상에서, 나는 그동안 많은 예수님에 대한 교육과 이야기들을 들어왔으면서 진정한 그리스도의 모습, 참 그리스도의 모습이 아닌 누군가의 그리스도의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본다.
      내가 고백하는 신앙 고백문을 통해서든, 나에게 다가오는 구체적인 삶의 증거들을 통해서든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것들을 거룩하게 자라나게 해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가? 예수님께 대한 중요한 관심에서 자리를 놓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다르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지 시간을 내서 대화를 예수님과 나누고 있는가?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시작에서 종말까지 하시는 일을 인간은 깨닫지 못한다.”라고 코헬렛은 말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불가지론과 허무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중심과 목적이 하느님과의 일치라는 것을 예수님을 통해서 보여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나도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바라보신 것처럼,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예수님께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는 것을 고백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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