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24주일(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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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집회 27,30-28,7 로마 14,7-9 마태 18,21-35

       

      용서와 관대한 삶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이 왜 어려운가? 그것은 우리를 아프게 했던 사람에게 다시 되갚고 싶은 자연스러운 생각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에 용서를 경험해봤던 사람들은 그들의 고통을 통하여 성장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이 생각과 이론만큼 쉽지는 않지만 우리가 하느님과 이웃에게 용서를 기대한다면 우리도 누군가를 용서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처음에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잘못에 대하여 생각할 때, 우리는 정말로 용서할 수 없는 어두운 날들을 보내게 된다. 해리포터의 팬들이라면 ‘용서받지 못할 저주’에 대하여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주문들은 잊어버리거나 용서할 수 없는 것들로 사용되어졌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거나, 죄에 대한 무감각이나, 행위 뒤에 숨어 있는 악으로써 용서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회개로 나타나면 영예로운 것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소설에서도 드러나고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 그것도 원죄까지도 용서하시기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심지어 우리가 용서하기 힘든 죄들을 경험하게 될 때, 그래서 우리가 죄에 대한 화와 분개를 하는 것을 멈추기 불가능해보일 정도로 심각할 때에도 우리는 하느님께 용서의 힘을 청해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삶을 통하여 이것을 증거 하셨는데, 우리가 죄 가운데 있더라도 우리를 용서하셨고, 그분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과 그분의 마지막 순간에 홀로 남겨둔 당신의 친구들을 용서하셨다. 당신 자신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님께서는 서로 용서하는 것과 용서할 수 없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에게 저주를 품고 있는 사람이 생겨나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가 행했을 수 있는 잘못으로 인하여 우리를 용서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겨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니 뒤처지지 말고 서로 용서해야 한다. 이로써 우리가 저지른 잘못을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우리는 무한하고 무상으로 주어지는 은총과 우리에게 어떤 불평거리도 없이 다가오시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모르더라도 주어지는 은총의 선물이라는 것을 뜻한다. 바오로 사도 역시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을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로마 13,8)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진정한 사랑은 타인의 행복과 복지를 위하여 돌보는 것이기에 용서는 보다 쉽게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을 되새겨 준다.

      그렇다고 이 말이 죄를 지은 사람의 행동에 대한 해결을 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를 풀어주는데 도움을 준다. 하느님의 사랑은 모든 악을 이겼고, 우리의 마음속과 말과 행위를 통하여 이 사랑을 담고 살라고 불림 받았다. 우리가 오늘 청하는 타인에 대한 용서의 기도는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우리의 청원과 하나가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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