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23주일(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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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지혜 9,13-18 필레 9-10.12-17 루카 14,25-33

       

      십자가의 유용성

       

      오늘은 우리 생활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십자가의 삶에 대해서 나눠보자.

      누군가 위대하거나 특별한 사람으로부터 포옹을 받았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특히 어릴 때 커보이던 아버지가 성장한 나를 안아주실 때 가냘프고 앙상해진 등을 느끼게 된다면? 아마도 인간의 크기로 오그라든 누군가와 마주하는 나 자신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 닥치는 대로 죄와 나쁜 행위를 일삼는다면 그는 많은 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잘못들에 대한 책임은 잊어버리고, 지금 일어난 일들에 대한 분풀이나 화를 가슴에 품고 산다면 그의 생활은 더욱 어두워질 것이다. 흔히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치고 자신이 결백하다고 주장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듯이,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하듯이 우리는 많은 경우 죄를 지으면서도 자신을 합리화하고 덮어두려고 한다. 이와 반대로 자선과 자비와 사랑을 베푼다면 이웃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이렇듯 우리 안에서 생활해 나가는 모습에 따라서 어떤 결과들이 흘러나오는지 알고 있다.

      오래된 나무의 가지와 수박을 놓고 도끼로 내려치니 후자는 산산 조각이 났고, 전자는 상처만 생겼다. 그러자 가르침을 주는 스승은 ‘이렇듯 빠르고 쉽게 자란 것은 여물지 못하는 법이다.’라고 가르쳤단다.

      흔히 나이가 들면 같은 말을 되풀이하거나, 쉽게 잃어버리는 정신, 그리고 모든 것이 쇄약해지는 것을 목격하거나 체험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그 자신으로부터 사라져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남겨질 소중한 지혜와 정신이다. 왜냐하면 단순해진 삶 속에서 풍겨 나오는 진솔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생각과 의견이 일어날 수 있지만 나이가 든 육체를 지탱하기 위해서 약을 복용하고, 음식을 챙겨 먹는 것처럼, 오랜 시간을 두고 자리하게 된 무엇인가는 유연하면서도 강인한 힘을 지니게 된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들으려는 자세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어떤 특정한 체험을 통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체험 이후의 지속적인 삶으로 지탱되는 것이다. 만얀 내가 우연한 모습을 가장한 계획을 꾸미고 있을 때, 저 위에서 ‘그렇게 하면 안 되지’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목소리가 아니라 이층에 살고 있는 어떤 할머니의 목소리였다면? 하느님의 목소리는 아니지만 내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한 무엇이 있듯이, 누군가 잘못을 저지를 것 같으면 붙잡아 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도, 부부라는 관계 속에서도, 서로 대화가 없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각자의 모습대로 판단하고 모든 것을 결정하면서 상대방에 대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오해하며 분열과 골이 깊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대화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것은 자신의 것을 버리는 것을 뜻한다는 것을 심리 상담의 차원에서 이야기 하듯이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귀담아 듣는 것은 누군가를 완전히 형제를 받아들이는 삶이 될 것이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되새겨 본다. “누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셨기에 세상 사람들의 길이 올바르게 되고, 사람들이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으며, 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을 새롭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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