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22주일(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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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집회 3,17-18.20.28-29 히브 12,18-19.22-24 루카 14,1.7-14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자.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 인자한 사람은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서 돋보이는 빛을 발휘하게 된다. 이것은 인위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몸에 밴 진실 된 삶의 향기라는 것도 분명하다. 즉 누가 보아도 변함이 없는 모습과 자기 자신이 하느님 앞에서 한결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실 오늘의 상황을 잠시 둘러보면 바리사이들 가운데 지도자의 집에 들어가 식사를 나누시는 예수님과 초대된 사람들의 모습이다. 누구나 예수님으로부터 혹은 초대해준 주인으로부터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아 ‘좋은 말씀’ 혹은 대화하기 좋은 자리를 잡으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머무는 동시에 변형되지 않고 통과 할 수 있도록 나의 모든 부분을 깨끗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어린아이, 버림받은 사람들, 고립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돌려받으려고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정받기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정한 사람의 우수한 능력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의 육체적, 정신적 불행을 돕는 일에 더욱 집중하라는 것이 주님의 말씀이다. 세상의 관점에서 파벌을 이루고, 관료적인 행위로 타성에 젖어들고 있는 동안에는 이 복음의 말씀이 살아 숨 쉬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베푸는 것은 주님의 것을 나누는 것이지 나의 무엇인가를 과시하거나 우월한 마음을 갖으려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필리 3,18)들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나이다.’ 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주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모든 생명의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우리는 침묵이 필요하고,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들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되새겨 본다.

      윗자리에 앉으려는 사람의 습성에서처럼 더 이상 올라갈 자리가 없게 될 때의 자신의 초라함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혼자 외로이 앉아 있는 모습과 대조적으로 사람들의 화목한 자리를 바라보아야 하는 어리석음도 깨닫게 된다. 흔히 어느 집에 초대를 받든가 혹은 본당 안에서 잔치가 있으면 본당 신부는 제일 좋은 자리 혹은 따로 준비된 자리에 앉히려고 한다. 물론 그런 위치적인 표지도 중요할 때가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신자들 사이에 앉고 싶을 때가 있다. 한편 신자들 가운데에는 본당신부가 주변에 있으면 어렵다는 이유와 더불어 자리를 피하려는 경우들도 경험하게 된다. 과연 필요악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본당신부의 위치를 묵상하는 자리를 경험하게 되면서,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소외되고, 무엇인가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임을 되새겨 본다. 예수님께서 우리 곁에 오셔도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선민사상과 우월의식에 고취된 소수 엘리트 집단에게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보편적인 구원의 소식이다. 또한 정의로운 판단으로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하느님의 정의가 미치도록 노력하라는 말씀이다. 세상에서는 판단의 기준이 제공하는 사람의 양식에 달려있지만, 하느님의 판단은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영원한 삶에로의 초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모든 기준들을 알고 실천하는 오늘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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