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66,18-21 히브 12,5-7.11-13 루카 13,22-30
좁은 문 찾아 나서기
진리라는 것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다. 기쁨이나 슬픔, 두려움 혹은 평화의 모습으로 누군가의 삶의 모습 속에서 그것이 진리였다고 말해지는 순간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전형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리를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은 진리의 삶을 충분하게 끝까지 살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그리스도인 삶의 방식에 가장 큰 도전이 된다.
신앙을 갖고, 신앙을 알고, 신앙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를 진리 안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이것은 하느님 친히 진리이시기 때문이다. 가톨릭 교리에서도 ‘신앙 안에서 순종하는 것은 세상 안에서 우리가 들은 대로 자유롭게 실천하는 것을 뜻한다. 그 진리는 그 자체로 진리이신 하느님으로부터 보장받기 때문이다’(CCC 144).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삶을 예수님께 순종하는 이유는 그분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아는 것은 진리를 아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대로 살아가는 것은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된다. 예수님 친히 구원에로 인도하시는 길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행위로 진리를 가르쳐주셨다. 그리고 이 진리는 많은 대답들을 가져왔다. 죄인들에게 희망을, 종교 지도자들에게 혼란을,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혼동을 가져왔다. 예수님으로부터 선포된 진리를 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단계에서는 진리의 선포가 종종 아픔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모습이 변화되기를 바라는 것이었고, 변화는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가 그렇게 우리의 삶을 예수님께 맞춰나갈 때 진리를 품에 안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자리를 잡아나가는 삶에 좌우명들을 갖출 수 있게 되는데,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입니다.”(필리 1,21)라고 말하게 되든지,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바로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로마 14,8-9). 또는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2코린 5,15)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삶을 이끌어주시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그분의 제자가 되는(루카 14,26)의 모습을 반영한다. 따라서 작은 계획들 속에서 기꺼이 주님을 따르게 되는 자신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표현이 편협한 종교관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 길의 목적지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을 찾을 때는 주님의 가르침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단순하게 예수님을 알았다고 구원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며,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결코 좋은 문을 알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제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구원의 문으로 나아갈 수 있는 오늘을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