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20주간 금요일(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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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룻 1,1.3-6.14-16.22 마태 22,34-40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손톱 밑에 때가 꼈을 때 그것을 제거하는 방법은 손을 깨끗이 씻는 것과 손톱을 깎는 방법이 있다. 물론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제일 합리적이고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아무리 손을 씻어도, 그리고 손톱에 다른 색을 바른다고 하더라도 그 속의 문제가 해결되려면 근본적인 치유가 있어야 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계명의 골자를 듣는 이유는 진정 그 답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곤란하게 만들기 위한 지도자들의 질문의 답변이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과 지니고 있는 힘을 과시하는 것과 예수님께서 다른 지도자 그룹들을 꼼짝 못하게 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확인하려고 왔을 뿐이다. 우리가 흔히 복음에서 예수님을 찾아오는 병자들과 죄인들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죄인들과 병자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알기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철저한 도움을 요청하려고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입지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모습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의 복음이라면, 그것을 나오미와 두 며느리 사이의 관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자기 고향으로 돌아간 오르파나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하겠다는 룻이나 모두 자신에게 충실하게 살아간 사람들임에 분명하다. 오르파가 자신의 백성에게 돌아간 것은 그가 의지할 것이 하느님이 아니라고 단정하기 어렵지만, 룻에 비교해볼 때 그렇게 비춰지는 것뿐이다. 하느님과 그분의 영광을 최우선의 자리에 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선택이 주어지는데, 그 선택은 신중한 생각과 결심으로 이루어지는 삶의 모습으로 뒷받침되어지는 것이다.

      오늘 확인해보는 우리의 삶의 모습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나눠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에게 힘을 전해주며, 그 속에서 확인되어지고 자라나는 사랑의 신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웃에 대한 사랑도 첫 번째 사랑과 다름없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흔히 누군가 싫어지면 그 사람 자체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행위와 생각도 싫어진다고 했다. 오르파는 나오미가 싫어서 자기 민족에게 돌아간 것은 아니지만 모압의 전통으로 돌아간 것 뿐이다. 반면 룻은 나오미를 선택함으로써 나오미의 하느님을 선택하게 된 것이고, 하느님을 사랑하게 됨으로써 더욱 나오미와 나뉠 수 없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영주권과 시민권을 취득하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의 간절함을 잠시 생각해 본다. 왜 그것을 간절하게 원하는지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와 백성의 한 구성원으로써, 이 나라를 사랑하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진정 이런 마음으로 미국의 한 구성원이 된다는 뜻에 맞게 살아가는지 스스로 판단해야 할 것이며, 일단 그것을 취득한 사람들은 그런 모든 규정을 사랑하면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할 것이다. 하느님의 축복과 사랑을 근본적인 목적으로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미국의 기본 정신이 맞다면, 미국 시민들의 모습 속에서 이웃 사랑과 하느님 사랑의 모습은 어디까지인지 증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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