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2주일(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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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이사 49,3.5-6 1코린 1,1-3 요한 1,29-34

       

      그리스도의 빛과 사랑을 나눔

       

      매 미사 때마다 우리는 사도 바오로의 인사말을 되새기면서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과 평화를 바란다. 이것은 우리의 죄를 없애시기 위해서 오신 하느님의 어린양에 대한, 땅 끝까지 구원이 빛을 비추기 위해서 파견된 주님의 종에 대한 믿음에서 나타나는 찬미의 인사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하느님의 진노를 그려본다. 그것은 우리에게 잘못된 무엇인가를 쌓아두셨다가 감정적으로 폭발시키는 모습은 아니다. 어떤 특정한 욕구가 해결되지 않아서 폭발하는 노여움도 아니다. 이상하게도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다. 우리에게 열정을 갖고 이끄시려는 그분의 간곡한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만약 우리가 편안하고 녹녹하게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해 오신 하느님의 어린양의 표상에 너무 빠져서 그분의 이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역설적 묵상이다.

      이번 년도에는 마태오 복음의 말씀을 주로 듣게 될 것이지만 오늘 듣게 되는 요한복음에서의 세례자 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신원조회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가운데 최고의 것이 된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우리가 전례를 통해서도 크게 외치는 노래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양’일까? Lamb은 어린 양을 뜻하는 것으로써, 순수한 사람, 어리숙한 사람, 숙맥 등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온화하거나 부드럽거나 순수한 사람을 뜻하고 있기에 진정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는 표현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모든 인생의 여정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알게 되듯이, 찾아보기 힘든 순수한 사람이었다. 심지어 예언자들의 메시아에 대한 선포에서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이사 53,7) 드러나는 온화함과 무죄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죄를 위한 희생제사로 양의 모습을 취하신다. 세례자 요한의 자신의 제자들에게 그리고 모든 세상에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의 자신의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 예수님 위로 내려오는 하느님의 영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로써 그는 이분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을 따르도록 인도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의 길로 그들을 인도하는 역할까지 하게 된다. 이것이 세례자 요한이 구원의 역사 안에서 우선적으로 행했던 사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예수님으로부터 불과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주님의 세례 축일을 통하여 확인하바도 있다.(루카 3,16)

      세례자 요한의 충실한 자기 역할의 수행은 하느님의 종으로서의 삶은 물론 그 빛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그분께 믿음과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모든 민족들에게 그 전달되는 빛으로 나타난다. 결국 세상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복음은 하느님의 뜻이 세상에 전달되도록 사도 바오로를 이끄시어 많은 편지들을 통하여 사도직을 수행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의 전도 여행도 그것을 증명하게 된다. 그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이방인의 사도가 된다.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은총과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세상의 구원을 위한 복음을 나누기 위해서 오늘 우리도 불림 받았다. 이미 선포된 말씀과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삶의 방향을 따라서 실천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하느님의 어린양을 부르면서 주님을 따라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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