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2주간 화요일(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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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히브 6,10-20 마르 2,23-28

       

      우리가 행하는 하느님의 뜻

       

      선택이라는 말은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대한 순간을 뜻한다. 간단한 선택에서부터 운명을 건 선택이라는 분류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것이 어디에서 온 것이며,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선택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손쉽게 규정이라는 틀과 법망에 의존하여 그것이 최고의 잣대라고 말하고 따라가는 것은 아닐까? 오늘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대답하시는 내용을 보면 유다인들이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율법 규정을 교묘하게 어기는 모습처럼 보인다. 이것은 죄를 바라보며 누군가를 파괴하려는 것이 법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상을 담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에 가치를 회복시키려는 것이다. 물론 악의 선택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모습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선의의 피해자가 된다면 그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소크라테스가 말했다고 하듯이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하며 안주해야 할 것이지 궁금해진다.

      마크 트웨인이 살았던 당시의 인종차별에 대한 언어들로 꾸며진 ‘허클베리핀’과 ‘톰 소여의 모험’ 등의 작품이 변화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니거(nigger)에서 노예로, 인전(Injun)은 인디언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재작년 타계한 영문학자 장영희 교수는 “신체장애에 대한 편견을 심어준 데는 문학도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피터팬’의 후쿠 선장은 외팔에 갈고리를 끼고 있고,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녀는 다리를 절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 바라보아야 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습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언젠가 예수님께 대사제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만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 대답을 바오로 사도의 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사도 16,31)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뿐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요, 무엇을 해야만 합니까?’ 사도 바오로와 똑같은 답을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제가 말하려고 하는 의도는, 제가 매 주일에 성당에 가야합니까? 매일 로사리오 기도를 바쳐야 합니까? 각 주마다 영원한 우리의 어머니께 봉헌하며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바쳐야 합니까? 아니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마치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첨가해야 할 선한 목록을 작성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이런 표면적인 것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바리사이들은 무수히 많은 행동을 해야 하며,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그들의 믿음을 하느님께서 볼 수 있도록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에 더욱 강조점을 두고 나타나게 된다. 결국 사람은 안식일을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굳게 믿게 된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발전시킴으로써 깊어가는 신앙심이나 그분의 영과 법과 기본적인 뜻에 관심을 두지 않고 율법 준수에게 목숨을 건 생활을 하게 되었다.

      ‘안식일에 왜 하느님께서 하시던 일을 멈추고 쉬셨으며, 그 날을 거룩하게 만드셨는지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나 자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깊이 묵상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오늘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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