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사무 17,32-33.37.40-51 마르 3,1-6
허와 실
인생이란 두려움으로 대하거나 방어적으로 다루면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다. 반대로 저돌적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다보면 더 안전할 뿐만 아니라 재미있다는 역설을 믿는가? 자기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복음 때문에 자기 목숨을 내어 놓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라는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아무것도 모르기에 어려우면서 설레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다. 이제 그 길을 걸어가는 동반자를 만났으니 그 속에서 힘을 얻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느님을 믿기에 가능한 것이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생생함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찾으며 주님의 사명에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삶이 현실에서 증명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목표로 두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손발이 맞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다.
거품이 빠진 경제의 위기가 대단하듯이 골리앗이 소년 다윗의 돌팔매질에 쓰러진 것은 내 삶의 거품을 제거하기에 좋은 묵상거리다. 예수님도 안식일에 행하시는 자신의 선행으로 인하여 정면 대결을 받게 될 것임을 알고 계셨다. 그럼에도 안식일의 규정을 어기신 이유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며, 목숨을 살리거나 선을 행하는 것에는 제한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다. 동시대적인 모습도 정상적인 모습도 아닌 말씀의 권위와 치유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체제에 도전하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의지하는 삶의 모습이 그것이다. 어디서부터 주님의 것과 인간의 것이 나누어지게 되었는가?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유혹, 곧 아담의 유혹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아담이후 우리는 신의 능력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허물을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이 두려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하느님께서 우리를 치유하시고 회복하시려고 오셨음을 알려주는 것이 오늘의 기적이다.
신앙 중심의 가정교육에서 출발하는 삶을 다시 재정비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