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18주간 수요일(8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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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민수 13,1-2.25-14,1.16-30.34-35 마태 15,21-28

      하느님께 대한 확신

      아랫사람을 보면 윗사람을 알 수 있다는 표현이 있다. 어떤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생활 속에 묻어 있는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바라보면서 사람들이 하느님을 어떻게 그려볼 수 있는지 생각한다면, 우리의 행동과 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쉽게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들은 대개 우리 자신과 관련이 있는 사항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걱정한다. 임산부가 되면 어떻게 하면 자식의 자녀에게 좋은 태교가 되며, 무엇을 먹어야 할지, 초상집을 방문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학부모가 되는 순간이 다가오면 어느 학교를 보내야 할지, 과외 수업과 학원은 어디로 보내야 할지에 대해서 온갖 초점이 모아지게 된다. 자녀가 입시생일 때 대학 진학에 관계된 내용에 대하여 토론하고 비판하며 기도한다. 자녀가 군대 생활을 할 때 뉴스나 휴가 나온 군인들을 보면서 측은한 생각과 더불어 자기 자식처럼 느끼게 된다. 그러다가 모든 것이 끝나고 나면, 이 모든 것들이 다시는 심각하거나 걱정거리가 되지 않게 되는 듯 살아간다. 그리고 시집 장가를 들거나 병들과 죽음이 다가올 때를 걱정하면서 모든 것의 초점을 변경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이것을 자연적인 순리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처음 교육을 받고 자리를 잡게 된 기준들과 꿈에 대해서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 하고 있는지를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 가까이 도달하게 되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하느님의 지시에 따라 모세는 그 땅을 살펴보도록 사람들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외적으로 큰 거인들을 보고 생겨난 걱정거리는 그들의 믿음의 자리를 빼앗아 버리게 된다. 그들은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었고, 하느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안내하셨는데도 그들은 두려워하고 걱정하게 된다.

      그들을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풀어주신 분이셨고, 홍해 바라들 마른 발로 건네주신 분이었으며,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고, 바위에서 물을 솟아나게 하신 분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을 잊을 만큼 두려운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본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이 모든 일들을 가능하게 만드신 분이시라는 것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눈앞에 펼쳐진 것에 질겁하여 하느님의 놀라운 현존을 잃어버린 것이다. 매일 그분의 손길 속에서 살아왔으면서도 이렇게 쉽게 하느님의 현존을 잃어버리는 이스라엘을 통하여 지금의 나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오늘 자신의 딸이 호되게 마귀에 걸려든 가나안의 여인을 통하여 우리의 모습을 다듬어보아야 할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이 너무나 간절하고 컸기 때문에 어떠한 것도 자신을 가로막을 수 없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거절의 이야기에도 그녀는 더욱 간절한 매달림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간절하다는 것은 어느 순간 지나고 나면 사라지는 소원이 아니라 우리가 지속적으로 지니며 살아가야 하는 생명과도 같은 것임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우리가 말하는 하느님께 대한 확신은 어느 순간을 위해서 준비되는 것이 아니다. 매 순간 우리의 삶 속에서 증거 되어야 하는 기도의 삶이다. 굳건한 믿음, 확고한 신념으로 우리를 돌보시는 하느님께 의탁하면서 오늘을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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