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16주일(7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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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지혜 12,13.16-19 로마 8,26-27 마태 13,24-43

      마지막 심판 때까지 같이 존재하는 선과 악

      역사는 인류가 완벽한 사회를 창조하겠다는 유혹으로 가득 채워져 왔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신들과 다른 모든 것들 혹은 다르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파괴하거나 뿌리를 뽑고 싶어 하는 자연적인 욕망도 가져왔다. 이렇게 무엇인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조화롭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없애려고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받아들여졌다. 심지어 종교적인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도 보편적인 지향의 기도를 바치면서도 이런 생각에 빠져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결정하신 것을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옷을 입듯이 살아가는 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희망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즉 서로가 다르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소중한 신비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지체를 이루면서 하나의 완성을 살아가라는 초대인 것이다.

      따라서 이 모든 이야기들은 오늘 복음의 첫 부분의 비유에서 반대되는 것을 뽑아버리려는 행동이 예수님의 귀에 거슬릴 수 있었다. 이 비유의 진정한 뜻은 이 세상에서 죄와 악의 실체에 대한 우리 신앙인들의 응답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쉽게 해결하거나 빠르게 결정하려는 생각을 거절하시고, 그 대신 인내심을 말씀하신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이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놀라운 가르침이 된다. 그분의 가르침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게 마련이라는 말씀이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악을 증진시키거나 선과 동등한 지위를 주시는 것은 아니다. 짧게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있는 청중들에게 오직 하느님만이 인간의 마음을 진실 되게 판단하신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를 통하여 곧 시간이 거듭되면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심판하고, 평가하며, 사형을 언도하는 사람들로서 자리 잡게 하였음을 돌아보게 된다. 따라서 선한 뜻을 위하여 불가피하게 악한 것을 파괴하려는 기대로 가리자와 함께 밀 이삭도 뽑아버리게 된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모습과 인내로이 우리를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뜻을 되새겨 보는 순간이다.

      예수님께서 청중들에게 선포하시고, 스스로 문지기 역할을 하시는 하느님의 왕국은 우리가 익숙해진 유형의 왕국이 아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당신께 돌아서고 회개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다리는 하느님의 모습을 담고 있는 나라다. 이것이 오늘 읽은 지혜서의 키워드다. 하느님께서는 인내와 너그러움으로 우리 모두를 대하신다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비난거리를 찾지 않으시고, 우리가 회개하고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을 주신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희망이며,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을 사용하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복음의 다른 두 비유들은 하느님의 나라가 하느님의 인내하는 사랑과 관용 위에 세워진다고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강제적으로나 폭력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서둘러서 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천천히 그리고 자유롭게 때때로 지각할 수 없는 순간에 겨자씨와 같은 작은 씨앗이지만 큰 나무가 될 수 있는 힘을 지닌 모습으로 성장되는 것이다. 창세기에 과실수에는 그 모습을 지니는 속성을 담아 주셨다는 표현이 나온다. 그리고 인간을 만드신 후에는 사람 안에 하느님의 숨, 곧 성령을 불어 넣어 주신다. 이로써 우리는 어떠한 상황과 처지에 놓이든지 성령의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로마서를 통하여 밝혀지는 성령의 간절한 기도의 모습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로 다가온다.

      그런데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리듬을 지니면서, 인간의 마음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변화 되는 것처럼, 효소가 가루 반죽을 빵으로 부풀리는 것처럼 이뤄지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성령의 작용에 우리를 개방시켜 드리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거룩한 말씀의 씨앗으로 성장하고 무르익으며, 꽃을 피울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생활 속에서, 우리가 지니는 희망이 그분 안에 자리하는 것임을 깨닫을 수 있는 시간을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라지가 아니라 밀 이삭을 선택하여야 한다. 은혜로운 선물을 깨닫고 이 세상에서 하느님 안에서 사랑과 희망을 살아감으로써, 그분의 모든 심판 속에 있는 인내와 관대함을 이해할 수 있는 준비를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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