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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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1열왕 19,16.19-21 갈라 5,1.13-18 루카 9,51-62

       

      사랑의 끈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는 우리가 죽음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것은 억측 같지만 사실 더 이상 나를 위해 살지 않고, 자신을 버리고, 매일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다는 표현을 바꿨을 뿐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그리고 자동적으로 주님의 영광과 구원의 모습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떻게 그리고 어디로 주님을 따라가야 하는지 모르고 방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자유롭게 되라고 불림 받았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성령을 통하여 얻게 되는 사랑의 실천을 살아가라는 초대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랑의 끈으로 서로 섬기면서 살아가는 사랑의 공동체라고 불리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세상의 가치에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것을 하느님의 것처럼 사용하라는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마지막 여정을 걷고 있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계획이 충만해졌음을 알려주시려고 한다. 제자들은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적들의 손에 넘어가 수난을 당하는 예수님을 통하여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가시던 길을 돌아보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모습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신다.

      심판과 판단은 인간적인 길이라는 것을 야고보와 요한을 통하여 보여주신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마리아 마을에 하늘에서 불을 내려 멸망시킬 것인지를 묻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꾸짖으셨다. 보복은 하느님의 왕국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악마의 유혹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시면서 진정한 하느님의 나라는 사랑과 이해 그리고 용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한편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여정 속에서 주님을 따르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엘리야를 따르려는 엘리사의 모습에서도 끌리는 마음과 더불어 마무리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통하여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엘리사 역시 자신의 겨릿소를 잡아 모든 것을 마무리한 다음 엘리야를 따라 나선다. 세상 속에서는 아쉬움과 이별이 있을 수 있지만 사랑의 끈을 통하여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기를 바라는 사람만이 진정한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나이가 들면 이 모습을 깨닫게 되는데, 왜 힘이 있을 때나 뭔가 자신이 있을 때는 이것을 모르거나 외면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가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고 한다면, 서로가 파멸할 터이니 조심하라고 바오로 사도는 말해주고 있다. 그러니 서로 사랑하며 봉사하는 제자로서의 삶을 깨닫고 용서와 이해로써 공동체에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시도록 노력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위해서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도록 당부하고 있다.

      진정 우리가 의지하며 삶의 의욕을 느끼는 것은 인정과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임을 부정할 수 없듯이, 세상 속에서 살면서도 영적인 삶의 가치를 추구하여 하느님과 이웃과의 사랑의 끈을 놓치지 않는 제자가 되어야겠다. 그리하여 ‘어디든 당신께서 가시는 곳이면 저도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라는 고백이 갱신되는 하루하루를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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