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13주간 월요일(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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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창세 18,16-33 마태 8,18-22

      예수님의 제자 되는 값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간다는 말이 있듯이, 고생하지 않고 얻게 된 소득은 소중함이 다르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영위하고 있는 나의 주변의 조건들은 무상으로 주어진 것인가? 아니면 각별한 노력과 정성과 진심으로 얻어진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물론 빈손으로 일군 진정한 부자들도 있을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사회에 환원하지 못하는 부자라면 그것도 자신의 품속에서 사라지고 말 무엇은 아닌지 라는 생각까지 해본다. 자수성가라는 표현에서 풍겨지는 억척스러움과 결단의 의지는 높게 평가해야 하겠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것을 성취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기 때문은 아닐까?

      오늘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셨고, 교회가 여러 세기들을 통하여 되새겨왔던 정의에 대한 요구를 확인하게 된다. 바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이 그것이다. 수원교구 교구장인 이용훈 주교님의 글을 통해서 드러나듯이 “인간의 역사는 가난이 어느 개인의 사고와 이해, 실천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라, 인류가 공통적으로 당면한 과제이며, 따라서 형제적 결속과 연대를 통해 극복하고 풀어 나가야 할 과제”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강조하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은 신구약 성경과 초세기 교회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난다. 교회는 역사적으로 늘 가난한 이,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 인권을 박탈당한 이, 여러 이유로 소외된 이들과 함께해 온 것이 그 의미가 된다. 따라서 “성경은 당시의 시대적 사회적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며, 가난이라는 악을 극복하고, 가난이 몸에 배이도록 익혀 나가는 지혜를 가르쳐 주고” 있다.

      이런 교회의 가르침은 가톨릭 교리서에서도 잘 표현해주고 있다. “교회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은 지속적인 전통의 한 부분이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은 진복판단의 설교에서, 예수님의 가난에서,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에서 영감을 받는다.”(2444).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는 표현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부의 덫에 빠져듦 없이 살아가신 분이라는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삶도 그와 같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세상적인 모든 재화를 없애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모든 것들을 예수님의 가르침과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을 섬기는 것보다 덜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중의 역할을 부여하는 표현으로써,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세상의 재화의 가치보다 하느님 나라의 가치에 더욱 비중을 두라는 것은 물론이고,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돌봄, 곧 그들이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물질적인 도움을 주라는 것이다.

      세상의 재화가 주님을 따르는 일에 있어서 많은 걸림돌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클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에 이것을 실천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슬픔에 잠겨 떠나갈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다름 부류의 제자들에게 가오조된 것은 예수님과 그분의 가르침에 모든 중심을 두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는 표현은 매우 신중하고 의미 있는 표현이라고 많은 학자들은 동의하고 있다. 예수님께의 뜻은 죽은 이들의 장례가 장엄한 의무이기는 하지만 진정한 제자 됨의 요구에는 양보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 하신 것이다.(C. Sirois, Vatican Ⅱ Weekday Missal, Boston: Pauline Books and Media, 2002, p.1093) 이 표현은 실재로 받아들이기에 어려운 부분으로 다가오지만, 확신 속에서 갖게 되는 희생의 기쁨, 곧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로써의 영원한 삶의 길을 걸어가도록 도와준다는 것에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다고 지금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죽음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라는 표현은 아니다. 그저 그 속에서 행할 모든 것들을 충실하게 이행할 수는 있지만 주님의 가르침과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인간적인, 세속적인 요인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오신 주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선물이며, 그것을 나누기 위해 우리가 세상에서 노력하고 살아가는 것임을 알려주신 주님의 가르침에 감사하는 것이다. 사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목숨까지도 내어 놓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는 노력을 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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