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1주간 월요일(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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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1열왕 21,1-16 마태 5,38-42

      서로 인내하여라.

      세상의 눈으로 봤을 때, 나봇은 자신의 밭을 팔아도 문제가 없다. 오히려 그것이 더욱 지혜로운 판단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주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는 일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런데 아합은 더욱 우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임금이면서 자기 맘에 들지 않는다고 속상해하면서 자리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음식을 먹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좀 더 좋은 별장과 휴식처가 있음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포도밭은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는 것으로써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넘겨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면 이것은 당연한 처사였음을 알게 된다.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으면서 악을 행하는 아합의 모습은 인간의 추악함을 더욱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화해하거나 조정하면서 살아갈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세상과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시지만 그 말씀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생활하면서 더욱 느끼게 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악에 응답하는 것은 사랑이어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나의 적들과 나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사랑으로 기도하라고 전해주고 있다. 이것이 진리이기는 하겠지만 나의 본성과는 사뭇 다르기에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자연을 훼손하는 모습이나 거리낌 없이 꺾은 꽃의 모습대로 나에게 행한다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해본다. 영화 해프닝에서처럼 자연이 인간에게 그대로 갚아준다면 어떻게 살겠는가? 아울러 교회의 성인들이 주님의 말씀을 잘 보여주고 있음은 힘을 북돋워준다. 소화 데레사는 자신의 ‘작은 길’을 통하여 모든 것을 희생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갔던 성녀였다. 마리아 고레띠는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든 젊은이를 용서하였고, 그의 어머니 역시 용서를 청하는 그를 용서하였다.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는 같은 포로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았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저격한 사람을 용서하였다. 예수님은 이 모든 사랑과 자애의 근본을 살아가셨던 분이었다. 심지어 십자가 위에서도 그 사랑을 보여주셨다.

      우리는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들을 통하여 용서와 자애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길들을 만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운전 중 끼어드는 사람에게 웃을 수 있는 것도 그런 실천이 될 것이다. 직장에서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그를 존중해 주는 것도 작은 길을 걷는 것이다. 가까운 사이에서도 먼저 사과할 수 있는 것도 사랑을 체험하는 일이다.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반대의 의견이 있을 때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는 길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매일 나를 바라보시면서 인내하시는 하느님을 생각할 때 가능해진다. 그러니 우리도 주님의 모습을 따라 인내로써 서로를 받아들이고 사랑을 실천하는 좁은 길, 작은 길을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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