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11주간 목요일(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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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2코린 11,1-11 마태 6,7-15

      아버지께 기도하기

      참으로 대단한 이야기를 발견하게 된다. 바오로 사도 자신이 “비록 말은 서툴러도 지식은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오로는 편지를 많이 이용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바오로 사도는 필요한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기 위하여, 즉 자신이 공동체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일을 하였고, 스스로를 낮추면서 복음을 대가 없이 전해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이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는 아신다고 말하고 있다. 참으로 간결하면서도 무게가 있는 진술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왜 수고를 해야 하는가? 사람들에게 모함이나 부정적인 경우들을 발견하게 될 때에도 왜 복음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모든 것들은 나를 위한 것인가? 그리스도를 위한 것인가? 쉽게 말하기는 어려울 수 있는 비중을 느끼게 된다.

      이런 위기감과 부담감을 느끼면서도 되돌아보게 되는 것은 우리의 기도 생활이다. 사실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처음 배우고 암기하는 기도다. 하느님께 드리는 편지라는 형식의 모음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과연 우리 가운데 누가 하느님께 친근감을 느끼면서 자신이 필요한 것을 드렸을까? 그리고 우리의 기도 중에 아빠, 아버지라고 불리는 하느님의 이름을 그분의 자녀처럼 사랑스럽게 불렀을까?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기도의 전부는 모르더라도 주님의 기도는 바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그 내용도 잘 숙지하고 살아가느냐다.

      주님의 기도가 얼마나 대단한 기도인지 아무리 설명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기도문의 내용에는 전체 복음이 요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특별하게 기도문의 앞의 두 단어에 집중을 해보자.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아버지에 대하여 소개할 때, 우주의 주인 혹은 주님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아빠, 아버지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그 자체로 놀랍고 위대한 선물이며 축복이다.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받았으며, 이로써 하느님의 아들딸로써 입양되었다. 따라서 우리도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처럼 함축된 단어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성을 갖게 된 것이며, 아이 같은 믿음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느님을 알게 되었다.

      주의할 내용은 우리가 나의 아버지가 아닌 우리의 아버지께 기도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전체 교회와 함께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의 진정한 자녀들이고, 주님 안에서 형제자매라면 우리의 삶은 우리의 기도를 반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증명될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에 깊이 매료될수록 교황 바오로 6세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게 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말할 수 있고 그것의 의미를 깨닫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Hebblethwaite, Peter, paul Ⅵ: The First Modern Pope, Paulist Press, 1993).

      우리가 자주 바치는 주님의 기도를 마음속에서도, 이웃 속에서도, 기억하는 하루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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