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1주간 금요일(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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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히브 4,1-5,11 마르 2,1-12

      우리가 바라는 완전한 삶

      내가 바라는 일상의 것들과 특별한 날에 기대되는 것들의 차이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 예를 들어 성탄절, 부활절, 생일, 그 밖의 기념일 등에 받고 싶은 것과 연중시기라고 불리는 평범한 시간 속에서 받고 싶은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아마도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다보면 특별한 차이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날에만 한정된 신기한 마술이 아닌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구원에로의 확실한 믿음의 선물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한계로 어떤 특별한 것에 집중되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의 나라, 곧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도록 다 같이 노력하자는 격려를 하게 된다. 매일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그분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기억하면서 우리 안에 주님의 모습을 깊이 간직하며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속 생각을 읽으시면서 당신의 권능을 보여주신다. 중풍병자의 바람과 그분께 대한 믿음으로 치유를 청하는 마음을 읽으신 분께서는 당신께서 세상에 주시고자 하시는 것을 알려 주신다. 동시에 하느님의 아들이며 메시아로 오신 그분을 알아보기를 거부하는 마음이 완고한 율법 학자들의 생각을 보셨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은 그날 깜짝 놀랄만한 사건을 듣고 보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를 치유하시는 것뿐만 아니라 죄를 용서하셨다. 모든 사람들은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로써 우리 각자의 요구를 예수님께서는 전체적인 모습 속에서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마도 네 명의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예수님께 나아온 중풍병자처럼 우리 삶에도 마비된 어떤 모습이 있을 것이다. 기쁨의 생활은 죄책감이나 우리의 과거의 부끄러움으로 인하여 마비될 수 있다. 때로 어떤 두려움은 보다 안전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여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에서 움직일 수 없게 만들 수도 있다. 또는 오늘 복음의 율법학자들처럼, 우리의 고민 때문에 하느님의 은총의 힘을 통하여 제거되는 마음의 완고함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것은 우리 모두는 치유받기를 원하고 전인적인 완성, 곧 완전하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우리는 언제나 주님께 의탁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2011년을 시작하면 더욱 강하게 드는 느낌은 경제도, 권력도, 직장이나 집도 중요하지만 건강과 더불어 주님께 의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풍병자는 이로써 치유를 얻게 되었고, 율법학자들은 그렇지 못하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우리의 활동들과 태도를 살펴보자. 예수님께서 우리를 치유하시도록, 완전하게 해주시도록 바라는지? 아니면 어떤 특별한 체험이 있기를 바라는지? 우리는 모든 순간을 하느님을 위한 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늘 준비된 하느님의 특별한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주님께 열어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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