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 1,6-12 루카 10,25-37
이웃 사랑에 대한 도전
오늘 복음에서는 율법교사로부터 예수님이 시험당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의 질문은 모세의 율법 가운데 어떤 것을 실천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이외의 다른 계명은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인가? 마치 특정 나라에서 입시 공부를 위해서 필요한 과목만 몰아붙이는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무엇이 율법에 적혀 있는지 물으신다. 그 율법교사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대답한다. 이렇듯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왜 예수님께 그 대답을 요구했던 것일까? 그것은 후반부에 나타나는 질문과 예수님의 비유로 명확해진다.
이웃에 대한 예수님 시대의 정의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정의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가? 아직도 이웃에 대한 정의가 교과서적인 대답과 실재적인 대답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닌가? 혹 자신은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쉐마의 정신으로 대하고 있는가? 과연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가?
그런데 하느님은 온전히 사랑하고 있는가? 이웃에 대한 나의 태도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는가? 경외로운 마음과 새로운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가? 특별하게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나는 사랑을 실천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의 자선 행위가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반영으로 나타나는가? 때로 나는 나의 이웃에 대한 침묵을 지키고 있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삶과 가르침을 통하여 이 모든 것을 가르쳐주셨다. 따라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리스도 안에 중심을 잡는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신앙인에게 필수적이며, 중요한 원천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은총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이웃사랑과 하느님 사랑이라는 두 가지 길이 하나의 묶음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랑의 울림은 더욱 큰 사랑으로 성장해 나가는 에너지원이 될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복음을 왜곡하거나 잊어버리지 않도록 당부하는 것이다. 이 시대의 적그리스도의 모습이 다양하게 실행되고 있다는 것을 바라보면서, 이미 그리스도의 모습 속에서 우리에게 확인된 사랑의 계명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