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현재화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하느님이 사람을 만나는 장소가 바로 성경임을 강조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성경 말씀은 파피루스나 양피지와 같은 종이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이 그 말씀을 받아 마음에 꽃을 피우도록 기록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면, 어느 날 성경의 한 구절이 각 사람에게 말을 걸고, 그들이 살고 있는 상황을 비추어 깊은 영적인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 말씀을 더 이상 죽은 문자 속에 가두어 두어서는 안 된다. 말씀을 끊임없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의 삶 안으로 가져오고, 그 말씀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이때 하느님 말씀은 더 이상 과거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그것을 넘어 현재의 우리에게 구체적인 삶으로 다가오게 된다. 바로 이것이 말씀의 현재화, 내면화, 인격화, 강생화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을 현재화하셨는지를 하나의 예시로 나자렛 회당에서의 일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회당에 들어가시어 성경을 읽기 위해서 시중드는 자에게 두루마리 성경을 받아 들고 이사야서를 찾아 봉독하셨다. 그리고 그 두루마리를 시중드는 자에게 돌려주고 당신 자리에 와서 앉으시자, 모든 사람의 눈이 그분에게로 쏠리게 되었다. 바로 그때 그분께서는 그들을 둘러보시며 다음과 같은 결정적인 한 말씀을 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
예수님은 그 옛날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했던 말씀을 당신이 머무시는 그 시간과 그곳으로 가져오셨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그 옛날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 그리고 지금 이 시간으로(Hic et Nunc) 끊임없이 가져와야 한다. 그래야 말씀은 더 이상 과거라는 무덤에 갇히지 않고, 우리에게 다가와 지금 여기에 살아 있게 된다. 이것을 도와주는 구체적인 방법의 하나가 바로 수도 전통에서 알려준 렉시오 디비나, 즉 성독(聖讀)이다.
기도를 동반한 성경 독서를 통해서 한 말씀을 선택하고, 그 말씀을 온종일 되뇌다 보면, 그 말씀의 깊은 영적 의미가 불현듯 떠오르게 된다. 때로는 그 말씀이 우리 내면 깊이 다가와 그 옛날 사막의 교부들이 체험했듯이, 우리 마음 안으로 뜨거움과 통회의 눈물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로써 그 말씀은 2000년 전에 이미 죽은 말씀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주님께서 새롭게 우리 각자에게 선포하시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다가오게 된다. 이러한 렉시오 디비나(성독) 수행을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덧 말씀과의 인격적인 만남도 가능해진다. 그때 우리는 더 이상 삶과 영성이 분리되지 않고, 일상 안에서 말씀과 함께 말씀 안에서 살아감도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우리는 끊임없이 말씀을 우리가 현재 머물고 있는 지금 그리고 이곳으로 가져와야 한다.
-허성준 가브리엘 신부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출처 : 인천교구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