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존재를 활용하여 독서하라!
렉시오 디비나를 언급함에 있어 귀고 2세의 문헌이 중요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첫 번째 단계인 성경 독서는 고대 수도승들의 전통에서 행했던 성경 독서의 수행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므로 본인은 귀고가 주장한 독서의 개념보다는 더 원천적으로 고대 수도승들의 전통을 말해주는 문헌들에서 그 근거를 가져오고자 한다.
전통적으로 고대의 수도승들은 성경을 읽을 때, 오늘날과 같이 단순히 눈과 머리만 이용해서 대충 읽거나 빨리 읽지 않았다. 그들은 천천히 눈으로 본 내용을 입술로 작게 소리 내어 읽으면서 직접 귀로 듣고 또 그것을 기억과 마음에 간직하였다. 이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활용하는 능동적인 독서의 수행이다. 사실 고대에서 의사들은 종종 환자들에게 걷고 달리는 운동과 같은 하나의 훈련으로서 독서의 처방으로 내주기도 하였다. 그것은 독서가 인간의 다양한 기능을 사용하는 전인적인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성경에도 그 옛날 독서란 오늘날과 같은 묵독이 아니었다는 증거가 있다. 사도행전에 보면, 어느 날 에티오피아 고관이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마차에 앉아서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때 필리포스가 가까이 다가가니, 그가 이사야서를 소리 내며 읽고 있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즉 그 당시 독서는 소리내어 읽고 듣는 것이었다는 사실이다.(사도 8,26-30 참조)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에도 다음과 같은 사례가 나온다. 어느 날 세 명의 수도승이 한 원로를 찾아가서 저마다 자기들의 수행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시작하였다. 한 형제가 “스승님, 저는 구약과 신약을 모두 암기하였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그러자 원로는 즉시 그에게 “어지간히 시끄러웠겠소!”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말씀을 읽고 묵상한다는 것은 당연히 성경을 소리내어 읽고 듣고 암송하는 수행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 시대에도 일반적으로 독서는 소리내어 행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고백록』에서 발견하게 된다. 어느 날 아우구스티누스가 암브로시우스 성인을 방문했을 때, 그가 책을 읽고 있었는데 혀로는 소리 내지 않고, 눈으로 책장을 젖히고, 마음으로 그 뜻을 새겨나가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고 전하고 있다.
베네딕도 성인도 규칙서(RB)에서 점심 식사 후에 형제들은 침묵 중에 휴식을 취하든지, 아니면 개인적으로 독서를 원하는 사람은 독서를 하되 남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고 있다.(RB 48,4-5) 이것은 그 당시 독서한다는 것이 작게 소리내어 읽고 듣는 수행이었기 때문이었다. 성경을 눈으로 보고, 본 내용을 천천히 입으로 작게 소리 내고, 그리고 소리 낸 내용을 다시 자신이 귀 기울여 듣는, 전 존재를 활용한 독특한 독서 수행이 바로 고대 수도승 전통에서 전해준 훌륭한 영적 유산이다. 이것은 성경 독서 시간에 본문을 구조 분석하는 방법과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
-허성준 가브리엘 신부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출처 : 인천교구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