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2월 14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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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창세 4,1-15.25 마르 8,11-13

       

      우리가 되어주는 만큼

       

      ‘삶의 자리’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가 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성경 말씀을 접하게 될 때마다 느껴지는 단어다. 오늘 카인과 아벨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그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돌이켜보게 된다. 오늘 말씀을 듣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사랑을 느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중심을 잃지 않고 말씀의 깊이를 파고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수님과 논쟁을 하는 바리사이들은 그분을 시험하기에 바쁘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을 고발하거나 그의 잘못을 적발하려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없다. 그들의 주장과 학식에는 알맹이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핏대를 올리며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는 모습처럼 보여서 씁쓸하기까지 하다.

      카인과 아벨의 관계 속에서 깨어 있음과 그렇지 못한 삶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기에 그들의 봉헌은 하느님께 합당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못내 화를 내면서 문 앞에 도사리는 죄악을 덥썩 받아들이게 된다. 카인은 왜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드리지 못하면서 잘하고 있는 아벨을 시기했을까? 흔히 공부는 안하면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고 망상을 하는 학창시절의 내 모습을 보는 듯하다. 차라리 그 시절이었으면 좋을 것을 세상에서도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집착으로 물든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을 보시고 탄식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려본다. 가장 좋은 것을 가려서 하느님께 드리려는 모습은 없고, 누군가 잘하거나 뛰어난 모습을 드러내면 끌어내리려는 습성을 바라보게 된다. 그 근본에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봉헌의 삶을, 베풀어 주신 모든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바치는 신앙의 모습을 이상한 논리로 가로막거나 주저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갖고 있는 최고의 것은 무엇인가? 아니 내가 하느님과 이웃에게 나눌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인가? 내가 나눠야하는 것이 마지막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무엇을 아까워하겠는가? 오히려 가장 화려하게 그리고 잘 사용하려고 매 순간 노력하지 않을까? 마지막 남은 것이 아니라 나에게 나눌 시간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면 더 이상 어리석은 잘못은 범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느님께 바치는 것을 온전하기 않게, 곧 어떤 부분을 바치게 되었다면, 그래서 남은 이익이 있다면, 그것은 좋은 것도 아니며 하느님께 드리는 기쁨도 아니게 된다. 그것은 그저 남겨서 가져오는 어떤 것일 뿐이다. 온전한 것을 드리고 더 충만하고 완전한 것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믿음을 두고 살아가는 신앙인의 모습을 그려본다. 작은 것에 충실한 종에게 더 큰 고을이 맡겨진다는 비유가 새롭게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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