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6월 24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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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이사 49,1-6 사도 13,22-26 루카 1,57-66.80

      하느님의 섭리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충만하다거나 기쁘거나 행복하거나 하는 느낌을 가져본 경험과 지치고 힘들고 지루하고 회피하고 싶은 느낌을 가져본 경험을 비교해본다면 어떤 것이 더 많은가? 그리고 지금 내가 서 있고, 생활하는 모든 상황은 나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아니면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어떤 답을 할 수 있겠는가?

      ‘얼마나 오랫동안, 주님 얼마나 오랫동안 입니까?’ 이것은 하느님의 구원과 그분으로부터 오는 평화를 갈구하는 백성들이 고통 속에서 애원하며 질문하는 내용을 축약한 기도다. 그런데 이런 슬픔에 찬 애가와 기도는 즉각적인 답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방법은 우리의 방법과는 다르다는 것을 항상 체험하게 된다. 하느님의 답변은 언제나 우리의 길 위에 놓여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다가왔을 때 알아차리지 못한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이미 그 답이 우리에게 주어지지만 그것을 아직 알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다. 기다리던 아이의 출산을 위하여 아홉 달을 기다리는 것이 길게 느껴지는가? 하느님 나라의 문지기가 되기 위하여, 혹은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30~40년 혹은 평생을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고 길게 느껴지는가? 내가 바라거나 기다리는 것의 내용과 크기와 시간에 대한 기도의 응답은 하느님만이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알고 계신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있는가?

      하느님의 크신 축복은 우리 인간의 시간표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울부짖음이 있을 때도 아니고,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의 불임으로 인한 인간적인 아픔에 대한 응답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이 자신들에게 중심이 되었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난 뒤에, 믿음을 가졌던 것들을 멈췄을 때, 실망에 깊이 빠져있을 때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하느님의 섭리를 쉽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런 하느님께 대한 불신앙과 인내하지 못하는 모습은 지금의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은 고갈되지도 않고 언제나 충만하게 주어지는 선물로 다가온다. 하느님 안에서의 희망과 신뢰는 오늘 세례자 요한의 탄생 축일 속에 깊이 새겨진 교훈이 된다. 하느님께서는 즈카르야와 엘리사벳과 언제나 함께 하시면서 그들에게 주시기로 한 특별한 아이에 대한 축복을 준비하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출생과 작명을 통하여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이 아이와 그 가족의 이야기는 화제가 된다. 결국 세례자 요한의 삶을 통하여 그에게 준비된 그리고 그의 부모에게 부여된 기다림의 뜻을 알게 된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겸손하게 순종하는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사람으로 다가온다. 그의 지상의 탄생을 축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세례자 요한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회개하도록 불림 받았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듣게 된다. 이 모든 것을 마음에 새기면서 우리의 믿음 안에 성장을 일으킬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항상 들어왔듯이 서로를 사랑하고 섬김으로써 겸손하게 실천하는 삶과 하느님의 뜻을 새기고 기다리는 삶을 통하여 주님의 길을 준비하도록 우리의 모습을 다듬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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