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요한 4-9 루카 17,26-37
주님의 계명 속에 충실히 살아가기
체면 때문에, 이목 때문에, 교회가 하라고 하니까, 다른 신자들이 그렇게 하니까 따라 다니는 것은 올바른 계명의 실천이 아니다. 아울러 세속화 되어가고 있는 표징이 되기도 한다. 주님의 계명은 유행을 타거나 세대에 따라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변함없이 진행되는 사랑의 계명이다. 그 사랑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그러기에 한결같은 신앙 속에서 주님의 모습을 간직하며 살다가 주님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목적과 명분을 분명히 갖고 있는 신앙인으로서 흔들리지 않도록 참된 신앙을 익히고, 간직하며, 실천해야 한다.
세상의 종말이 다가올 때, 하느님의 통치는 펼쳐질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 적그리스도와 노아 때의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 소돔이 멸망 할 때의 모습들과 더불어 모든 사람들이 불려갈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준비와 깨어 있으라는 지침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가 진정 추구하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말하고 있다.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한 피해는 전혀 모르는 것으로 인한 피해보다 크다. 성숙하지 못한 신앙의 자세도 마찬가지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련의 가르침들이 되풀이 되는지를 깨닫는다면, 매일의 삶 속에서 신앙 안에 준비한다는 것이 주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매일 영성체를 통하여 주님의 몸과 피를 마신다는 것은 주님께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어 주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기 위함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리스도가 되려고 준비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기면 하면 된다. 모든 준비와 대응은 주님께서 친히 마련하신다.
그렇다면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의 모습은 어떠하겠는가? 세상에서의 가치가 아니라 영원한 세상의 가치를 볼 수 있는 지혜와 눈이 있는 사람이다. 겸손과 사랑과 일치를 추구하면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뜻을 듣는 사람이다. 물론 이 표현들이 익숙하지 않거나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다. 왜냐하면 주님의 가르침을 이미 듣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사용하거나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손해 볼 것 없이, 주님의 계명을 하루에 하나 씩 구체적으로 실천해보는 것이 어떨까? 이로써 주님의 계명이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끼게 된다면 비로소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뜻을 기다리며 매일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반복은 학습의 어머니라고 했다. 어려운 주문도 아니고, 서로 사랑하라고 하였으니 사랑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주님의 뜻을 몸에 새겨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사랑하라. 그리고 그 다음에 말하라”고 했다. 우리가 못할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