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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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욥 19,21-27 루카 10,1-12

      나의 살아계신 구원자 하느님

      내 눈으로 기어이 하느님을 뵙고 말리라고 욥은 말한다. 그리고 복음에서는 제자들이 전해야 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복음이며, 동시에 주님의 평화라는 것이다.

      내 해야 할 일은 정체성을 잊지 않고,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행한 일이 아니라, 내가 하루를 마감할 때 ‘상냥했는가, 친절했는가, 할 일을 다했는가?’를 점검해보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시지만 당신 혼자만의 세상을 만드시지 않으신다. 그것은 그분의 자비와 지혜안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이었다. 이것은 우리 혼자만의 구원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남겨주신 하느님의 놀라운 선물이며 가르침이다. 그리고 내가 만약 주님 보시기에 좋은 일을 했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알아주실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진리의 빛은 높은 곳에서 비춰지는 빛이 될 것이 때문에, 우리는 묵묵히 구원자 하느님을 생각하고 바라보면서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모노드라마가 아니라 공동 작업을 통한 구원의 소식을 전파하신다. 그리고 모든 파견되는 제자들에게 같은 성령의 힘을 주신다. 그것은 평화가 그들과 함께 하도록 준비하신 것이다. 그러기에 이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거나 휴식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히브리어에서 이 평화라는 의미는 보다 깊은 신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대 유대인들에게 평화는 진정으로 이곳에서 모든 평화를 의미하는 것이며,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성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선포하도록 말씀하신 평화의 의미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가슴 속에 새겨야 할 것이다.

      이 세상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평화가 지속적으로 세상에 전해지고 있으며, 그분의 제자들처럼 오늘 우리들도 같은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 불림 받은 것이다. 신앙인인 우리는 우리의 구원자를 알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신앙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것은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 곧 우리의 삶과 언어 속에 선포되어져야 하는 말씀이다.

      이시대의 청중이 많은 변화를 가졌다고 해도, 그 메시지는 한결 같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구세주의 평화가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이제 일꾼들을 청하라는 예수님의 깊은 뜻을 되새기면서 우리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평화를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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