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12월 7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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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이사 40,1-11 마태 18,12-14

       

      특별하게 나를 위해

       

      인터넷을 통해서 혹은 입소문을 통해서 특별하거나 신선한 무엇인가를 찾아나서는 경우들이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누군가를 위한 특별한 것을 준비하기도 한다. 무슨 특별한 날에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식탁을 준비하는 엄마의 손길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녀들과 남편을 위해서 이 나라에서 제일 좋은 것을 찾아나서는 엄마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느낀다면 특별하게 나를 위해서 준비해주시는 사랑의 손길과 마음을 먹고 자랐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에서 오늘 길을 잃어버린 작은 양 한 마리까지 찾아나서는 목자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하느님께서는 누구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라실 뿐 아니라 더 좋은 사랑의 잔치에로 초대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신다. 그러나 화해와 일치의 잔치에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특별하게 체험할 수 있는 신비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어둠과 어려움에 처해 있는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는지, 그것도 특별하게 ‘나’라는 존재를 기억하시면서 찾아오시는 주님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역설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그 깊이를 깨닫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변화로 인도하게 된다. 오늘 이사야 예언자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퍼져 나가도록 말하고 있다. 그 소식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쁜 소식이다. 그러니 누구도 참을 수 없이 기뻐하며 환성을 올릴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그런데 여기서 침묵을 지키라고 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답답한 세상사의 온갖 막막함이 묻어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이 소식이 기쁨의 소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는가? 귀먹고 말 못하는 장애가 아니더라도 우리 안에 응어리진 것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아무도 모르고 자신만이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일들이 있다면, 그것으로 인하여 평생을 극기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면 그 사람에게 어찌 오늘의 말씀이 위로와 기쁨이 될 수 있을까? 인간의 교만으로 서로의 귀와 마음을 막고 말문이 막힌 채 자신의 성 안에서 몸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거나 진정한 대화는 사라지고 욕망의 소리들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침묵으로 하느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답은 ‘예스’다. 왜냐하면 하느님 앞에서는 더 이상의 말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도 올바로 듣고 제대로 이야기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의 외침은 우리의 귀가 아니라 영혼과 마음을 사로잡는 평화와 위안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사의 성읍들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시다’ 하고 말하여라.”는 이사야의 외침은 참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선물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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