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 11.4-15 마태 14,22-36
우리 안에서 놀라운 일을 하시는 하느님
인간의 일반적인 특성 가운데 하나는 눈에 띌만하거나 선풍적인 행사를 위한 매혹이다. 불꽃놀이의 마지막 장식이나, 극장식 뮤지컬의 마지막 주인공이 되거나 월드컵 축구의 결승 골을 넣든 기타 등등의 우리를 유혹하거나 호기심을 가지게 하거나 최면이 걸리게 하는 사람들이나 사건들이 있어왔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사시던 때에도 마찬가지다. 그분께서 누군가를 고쳐주시거나 이야기를 해주실 때, 그것을 듣거나 증인이 된 사람들에게는 눈에 띌만하거나 놀라운 사건이 되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놀라운 사건을 하나 또 발견하게 된다. 폭풍우의 중간에 예수님께서는 물위를 걸어 제자들 쪽으로 오셨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폭풍우는 가라앉았다. 이런 평범하지 않은 사건들을 목격한 증인으로서의 제자들의 믿음은 강해졌고,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선풍적이거나 놀랄만한 사건들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그들의 신앙을 강하게 하는데 도움을 받게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은 이런 놀라운 일들이 언제나 일어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만이 우리의 신앙을 강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인가라는 것이다.
진실은 우리 가운데 아주 적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권능과 자비와 사랑의 선풍적인 사건들의 제한적인 증인이 되는 것처럼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신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극히 일반적인 방법 속에서 하느님이 당신을 드러내시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계시는 하느님과 이웃들과의 관계 안에서 중요하고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 아마도 하느님께서 행하시는 일과 사랑은 종종 우리의 매일의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사건들 속에서 발견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쉽게 말해서, 몇몇 사람들은 자신들의 직무수행이나 부모로서 혹은 경찰로서, 의사로서, 간호사나 선생님으로서의 소명에서 자신의 신원과 정체성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종종 이런 일들을 하느님의 소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런 방법들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그분을 알리시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바닥을 청소한다거나 정원을 꾸미는 것도 하느님의 창조물의 아름다움을 더욱 분명하게 성장시키는 것이 된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위해 듣는 일분의 시간으로 그 무게는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 또한 우리가 누군가가 드나들 수 있도록 출입문을 잡아 주거나 주차장의 좋은 자리를 양보하거나 친절한 모습을 통하여 다른 선행을 함으로써, 하느님의 사랑과 현존을 이 세상에 더욱 잘 보이게 만드는 일이 된다.
이것은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물 위를 걷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다양성 속에서 우리를 불러주시고 그분의 사랑을 이웃들과 나누도록 초대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아주 간단하게 매일의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으며, 우리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참으로 우리에게 이루어진 놀라운 일들이며, 우리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기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