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1월 17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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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히브 5,1-10 마르 2,18-22

       

      그리스도인의 순명은 위대한 거룩함이다.

       

      자신의 힘을 알면서도 그것을 뽐내거나 드러내기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진정으로 필요한 때에 사용하도록 정해주신 매뉴얼에 따라서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은 대단한 용기와 지혜를 겸비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암행어사라는 직책이 있을 때, 말 그대로 모든 사실들을 알아보고 꼭 필요한 순간에 임금님의 뜻을 펼쳐서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와 기쁨을 되찾아준다는 설정은 더욱 감명 깊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오늘 히브리서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다”라고 전해주고 있다. 여기서 우리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마음 깊숙한 곳으로 같이 내려가 보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에게 이미 알려진 것처럼 그리스도의 삶 속에 담겨진 순종과 고통의 의미를 묵상해보자.

      우리 모두는 매일 순종에 대해서 생활하고 있기에 순종이라는 말의 의미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어린 아이 때에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법에 순종하고 규정들과 의무에 순종하며 살아간다. 이런 생활 속에서 우리는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를 실천함으로써 공동의 생활에서 필요한 어떠한 질서를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의 순명은 규칙을 준수하는 것보다 더 멀리 진행되어 간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모범에서 확인되는 것이다. 그분의 순명의 초점은 단순하게 의무나 규칙을 준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것에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의 순명에는 기도와 식별과 숙고가 포함되어 있음으로, 무엇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의 순명은 종말에 대한 생각과 평화와 정의와 사랑의 빛 속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들에 대한 숙고와 질문들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대한 순명은 그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이루어지까지 한다. 그의 고통은 그분께서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오셨다는 것에 대한 오해와 거절과 조롱과 분노에 기인한다. 심지어 그분의 가족과 친지들까지도 그분의 말씀과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다.

      이것으로 고통은 충분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폭력과 육체적인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이 남아 있었다. 오늘 복음에서는 순명의 전형적인 양식을 확장시키고 있다. 또한 생각과 행동의 새로운 방법을 열어주고 있다.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순명은 사람들의 요구와 그들에게 복음의 가치를 적용시키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성경을 통하여, 전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통하여, 우리가 성장하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순명의 삶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로부터 오해나 거절 혹은 반대 의견을 접하게 될 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것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은 아니다. 반대의 의견이나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의 올바른 뜻을 굳게 실천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인간끼리의 의견 대립은 아무 문제도 안 되지만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실망하고 적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뜻과 대립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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