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7월 11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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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탈출 1,8-14.22 마태 10,34-11,1

      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삶

      흔히 무슨 일을 하게 될 때면, 그것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고 비용을 따져보게 마련이다. 그것은 저렴한 비용에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다. 그런데 의료비용이나 죽음을 직면하게 되면 비용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기를 바라게 된다. 이렇듯 중요한 순간에는 돈을 생각하지 않고, 가치를 찾게 마련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서 우리의 신앙생활의 건강성을 확인해보면 어떨까?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베네딕토 아빠스의 삶과 작업은 수도회 규칙을 만드는 것은 물론 베네딕토 수도 생활의 기초를 설립하였다는 것에 있다. 그의 수도회 규칙은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께 봉헌하기 위하여 가난과 순결과 순명의 삶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런 소중한 삶의 보물을 바라보면서 토마스 모어 성인의 유산을 같이 묵상해 보게 된다.

      16세기 초 토마스 모어는 병들었으며, 런던의 악명 높은 타워에 투옥되었다. 그는 그의 서약에 요구되는 표현들로써 국가에 대한 반역죄의 누명을 쓰고 공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맹세는 헨리 8세 왕의 사회 통념에 어긋나는 이혼과 재혼을 지적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왕은 잉글랜드의 교회의 유일하고 영예로운 영적인 수장으로써 자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였다. 토마스 모어는 양심을 지니고 자신이 지니고 있던 가톨릭의 신앙을 배반하고 싶지 않았다. 따라서 이교도적인 맹세와 맞서 싸우게 된 것이다. 그러나 토마스 모어의 가족들은 그와 반대의 서약을 하게 된다. 그의 가족들은 자신들이 나라에서 원하는 서약을 행했을 뿐만 아니라 토마스 모어가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고 왕의 계획에 순종하도록 여러 차례 설득을 시도하였다.

      토마스 모어가 수감된 타워의 잠긴 감옥에 몹시 화가 난 그의 아내 앨리스가 방문하여 모어가 자신의 서약을 철회하고 왕께 맹세함으로서 자신을 삶을 구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바보라고 비난하였다. 심지어 그의 사랑하는 딸 마가렛은 여러 가지 계략과 논쟁으로 모어가 사인하기를 바랐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토마스 모어는 자신의 가족을 사랑했지만 그들과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하여 자신이 지켜온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희생할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신앙과 그리스도를 배반하지 않으면 참수시키겠다는 고통스러운 선고를 받아 죽게 된다.(Thomas More: A Portrait of Courage, Wegemer, Septer Pub., 1995).

      역사적인 인물로 기록된 성 토마스 모어는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지위와, 부와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리는 고통을 받아들인 위대한 그리스도인으로 남게 된다. 그는 자신의 양심에 타협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가족을 포기할 수 있는 위엄과 용기와 비통의 그릇을 선택하였다.(Thomas More, Murphy, triumph Pub., Brons, N.Y., 1997)

      토마스 모어는 도끼가 자신의 목을 내리치기 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왕의 충실한 종으로써 죽지만 하느님이 충실한 종이 우선이다.” 오늘 우리가 복음의 말씀을 반영하면서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나도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의 충실한 종으로써 살아가기를 열망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그 보상은 하늘나라에서 누릴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을 믿으며, 세속화의 흐름과 싸울 수 있는 믿음의 훈련을 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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