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9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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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1코린 4,1-5 루카 5,33-39

       

      주님의 심판

       

      부모님이 완벽한 분들이라고 생각하는가?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개선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모습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부모님들조차도. 물론 나 자신은.

      새로운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새로운 방법론은 적용해봐야 할 때가 있다. 교회 가르침의 내용이 변한 적은 없다. 그러나 그 적용이나 해석이 변화된 것은 있다. 이것을 어떻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확인하게 될까? 나는 단식과 판단을 언제 하는가?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타인에 대한 심판을 조심하라고 말해주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 예수님을 체험하게 될 때 단식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로 묶어보면 ‘판단으로부터 단식’을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사순시기에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니라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매일 실천해야 하는 덕목이다.

      만약 우리 조상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가업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내가 그것을 이어간다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며, 반대로 그것을 버린다면 나의 삶은 새롭게 만날 수 있겠지만 조상들의 삶은 어떻게 바라볼 수 있겠는가? 세대가 바뀌어도 바뀌지 않고 남아 있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가 지금 무엇에 연결되어 있는지 생각해보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관리자로서의 성실함을 확인하면서 인간적인 심판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오직 하느님의 심판에 집중하고 있는 바오로를 만나게 된다. 이 말은 주님의 때, 곧 심판 날이 다가오면 우리의 행실대로 주님께서 심판해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복음에서는 단식을 하지 않고 자유롭게 먹고 마시는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해서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 자신은 단식을 행하는 것의 목적을 살아가지 않을뿐더러 누군가를 감시하는 사람으로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이 필요하지 않지만 곧 잃어버리고 나면 단식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주신다.

      이제 이 말씀을 우리의 일상에서 누군가를 평가하고 판단하려고 할 때마다 적용해야 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판단할 때마다 하느님으로부터 판단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화를 내거나 앙심을 품고 있는 동안에는 우리 자신이 상처를 받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의 길을 걷기 위해서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함께 하시는 주님의 심판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그 시절이 좋았다(thoes were the days)라는 말의 의미가 다의적으로 들려오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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