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11월 4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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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필리 3,3-8 루카 15,1-10

       

      하늘나라의 기쁨

       

      하느님이 계신 곳에 함께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신앙인들에게 질문하지 않아도 된다. 그 자체가 천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안전함과 구원의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 하늘나라에 있다고 오늘 듣게 된다. 그것은 죄인의 회개와 구원이다.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이유 때문에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 투덜거리고 있다. 특권의식이 가득한 그들에게는 자신들만의 리그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자기들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활로 병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지내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되찾은 은전과 양의 비유로 그들의 관점과 마음에 가르침을 주신다. 잃어버린 것은 그들 각자의 잘못이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병이 들었던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되돌아올 수 있는 방법은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멀리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생활 속에서는 이런 일들이 없을까? 문제는 자신의 틀을 쉽게 벗어내지 못하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시간이 좋을 때와 나쁠 때의 모습이 변화하고,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유익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태도가 변하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그들 모두도 주님의 구원의지에 포함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찾아 나서거나 받아들이는 것이 교회의 모습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양을 찾아나서는 목자나 은전을 찾는 어떤 부인의 모습은 진실 되고 절박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모습을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영으로 예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랑하며, 육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야말로 참된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세상적인 것, 육적인 것, 자신의 것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 비로소 주님을 찾아 나서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것이 회개며 구원의 길로 나아가는 사람의 자세다.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이 말하는 죄인들의 무리들은 그들에게 유익한 존재였다. 죄인들이 있었기에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상호간의 관계성이 없어진다면 그들만으로, 곧 깨끗한 공기 속에서는 살 수 없게 된다는 역설을 살아보자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삶의 공간에서 스쳐지나가는 부분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청중들 모두가 직접적으로 들을 수도 있지만 곰곰이 묵상하고 살아가야 할 비유들을 이용하신다. 위험으로부터 그들을 구출하시기 위해서, 더 큰 어려움에서 건져내기 위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하늘나라의 기쁨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해성사는 우리에게 지상에서의 준비를 도와준다.

      믿음과 회개는 우리의 두 날개가 된다. 이 때 우리를 위하여 다가오신 예수님의 선포를 이해할 것이다. 아울러 하늘나라에서도 천사들이 기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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