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성주간 수요일(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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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이사 50,4-9 마태 26,14-25

       

      주님의 제자로 남아 있기

       

      누군가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배반을 당하게 되면 그것 자체로 큰 고통을 체험하게 된다. 이것은 관계성의 신뢰를 무너트리는 것으로서 개인적인 상처의 감각을 공동체에 전해주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배반을 체험한 후 수반되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다시는 누구와도 신뢰를 쌓지 못할 수도 있게 된다. 그 결과는 외로움이며 고독이고 텅 빈 삶이된다.

       

      흔히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갈림길에서 내가 선택해야 할 것은 생명이다. 이것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중요한 선택이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모습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겸손한 순종과 사랑과 인간의 육체를 취해 우리의 구원을 위한 승리를 거두신 모습을 따라나서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창조물에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하나가 되도록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 어려움은 남는다. 유다의 배반은 구원을 위해 필요했던 것일까? 만약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지 않았다면? 이 말은 예수님은 꼭 죽음이라는 방법 이외에는 없었을까?

      솔직한 생각은 나에게 그런 충격 요법이나 강한 인상이 없었다면 쉽게 망각하거나 어디론가 다른 곳으로 흘러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배반의 인물은 원하지 않은 실망과 고통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했음을 공감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겼어도 그는 구원을 받기에 부적합한 자는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내가 사랑의 관계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조건- 죄로 기울어지는 조건-을 알면서 충만하게 포용하셨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의 아버지께 대한 신뢰는 배반을 통해서라도 혹은 다른 방법을 통해서라도 인간의 구원을 위한 계획을 실천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나를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새롭게 불러주신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 어려움을 겪게 되더라도 혹은 배반의 고통을 당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지금 이곳에서 충만한 삶의 행복을 누리고 실천하여 하늘나라의 행복에 이르도록 당신의 제자로 남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이제 나의 대답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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