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성모 승천 대축일(8월 15일 월요일)

Viewing 1 post (of 1 total)
  • Author
    Posts
  • #1739
    정하상성당

      묵시 11,19;12,1-6.10 1코린 15,20-27 루카 1,39-56

      죄의 부스러기에서 자유로워지기

      기쁨과 슬픔 가운데 어떤 것이 더 무게를 지니며 오래 남을까? 쉬운 듯 어려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내성이 생겨서 무뎌질 수도 있고, 벗어나지 못하여 흉터 자국으로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기쁜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슬픔이라면 조금은 심각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혹은 고통이나 분노가 그렇다면 더욱 어려운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런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신 성모님을 기억하고 있다. 쉽게 표현하면 세상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지셨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지상의 우리를 위해서 여전히 마음에 상처와 슬픔과 고통을 짊어지시고 기도하시는 어머니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회로부터 부적격자로 낙인이 찍혀서 소외되었던 나병환자들은 자신들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피하고자 하였고, 벌을 받았다는 통념으로 인하여 스스로 정상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피해서 살아왔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접하게 된다. 그런 그들도 예수님 앞에서는 도움을 청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들을 고쳐주시는 예수님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 인간은 누구도 지금 멀쩡하다고 해서 병에서 자유롭거나 온갖 재난과 사고에서 보장된 것이 아니기에 자만과 아집에서 벗어나 사회적 정의와 공정과 사랑의 마음을 살아가기를 바라신 것이었다는 것을 묵상해 본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움을 나누곤 한다. 그런데 조금 냉철한 표현을 사용한다면 우리의 배려나 인간미는 어쩌면 스스로에게 값싼 면벌부를 주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자신의 의무를 다했으니 이것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자족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자리 잡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 아닌 걱정을 해본다. 마리아와 예수님의 모습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고 말하면서도 그분의 삶의 영광스러운 부분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마음을 열어보고 싶은 순간이다. 자기만족의 나눔이며, 자기 기준의 정의에서 벗어나 자신을 내어놓고 겸손하게 낮추는 나눔과 정의와 사랑의 모습을 묵상해보게 된다.

      전능하신 분께서 미천한 나에게 큰일을 하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다는 마리아의 노래가 새롭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인간의 질병을 고치기 위하여 수많은 약이 개발되었다면, 마음과 영혼을 고치기 위한 사랑의 약이 세상에 주어지는 순간이다. 이 모든 일들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시골의 한 소녀를 선택하신 순간부터 이루어진 놀라운 순간이라는 것을 묵상하며 감사하게 된다. 엘리사벳의 입을 통하여 선포되었듯이, ‘주님께서 그대와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십니다.’라는 의미를 깨닫는 순간이다.

      마리아의 승천을 기념하는 것은 우리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 기준에서 벗어나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나아가겠다는 굳은 믿음이며, 혼자가 아니라 이웃들을 위하여 참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도구로서의 삶을 받아들이는 용기다. 입으로 쉽게 암송할 수 있는 마리아의 노래가 아니라 한 구절 한 구절이 뼈와 살이 되고, 양식이 되어 살아가면서 죄의 세력과 맞서고 승리하시는 하느님의 영광을 준비하는 삶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맞설 수 있는 용기야말로 참 사람이요 참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것을 묵상하는 밤을 맞이하자.

    Viewing 1 post (of 1 total)
    • You must be logged in to reply to this top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