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성녀 캐서린 드렉슬 동정녀 기념일(3월 3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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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집회 42,15-25 마르 10,46-52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

       

      남의 정성에 대해서는 쉽게 혹평하면서, 타인이 나에게 클레임을 걸 때마다 억울해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주는 것은 무엇이든 비싼 것이고, 남이 주는 것은 공짜여야 한다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하면 스캔들이 되는 기준은 공정한가? 우리가 이성적으로 판단하면서도 감성적으로 치우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주님의 업적은 그분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씀을 통해서 누군가의 노력과 꿈의 결실들은 그 자체에 가치가 있음을 생각해보게 된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선물이라는 것을 새롭게 되새겨 본다.

      하느님의 놀라운 창조의 모습을 자연의 놀라움에서 통감하게 된다. 물론 과학의 발달로 모든 것에 새로운 모습을 소개시켜 주고 있지만 근본적인 모습에 대한 신비로움에 대해서는 여전히 놀라움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어떻게 멈출 수 있겠는가? 하느님 친히 모든 존재 안으로 들어오셨고, 모든 것의 근원이 되셨다는 것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하느님의 놀라운 작품 속에서 그분의 모습이 반영된다는 것을 오늘 새롭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연 속에 담긴 하느님의 놀라운 지혜를 깨닫는 동시에 창조주와 같아지려는 어리석은 인간의 눈을 새롭게 뜰 수 있기를 바란다.

      하느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의 극대화는 인간의 몸으로 육화하신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다. 오늘 눈먼 바르티메오를 고쳐주시고 그에게 볼 수 있는 힘을 주신 사건에서 더욱 분명하게 알려주신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라고 외치는 바르티메오의 외로운 외침을 둘러싼 복잡한 소음의 혼동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만은 그 외침을 들으시고 그 소경의 눈을 치유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군중의 무관심으로부터 감춰진 이를 위하여 움직이신다. 소리치고 꾸짖는 예수님을 그려본다. 조용히 해라! 그에게 길을 내 주어라! 용기를 내어라; 예수님께서 너를 부르신다. 등등. 예수님께서는 멈춤과 들음의 깊은 뜻을 우리가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자신을 구원할 믿음에 대하여 이야기하시며 그를 치유하신다. 성경에 이미 표현되어 있던 말씀처럼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께 대한 들음으로써 그는 자신의 구원자로서 오셨음을 선포하는 믿음으로 치유를 받는다. 자신의 신앙의 삶 속에서 창조주이며,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능력을 베풀어주시는 하느님의 권능에 의탁하는 항구한 믿음으로 일으켜 세움을 받게 되는 바르티메오를 마주하게 된다.

      이제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더욱 깊이 다가오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분께 요청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 가지 어려운 부분은 우리가 망가트린 것에 대한 책임을 하느님께 떠맡기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청하기 전에 우리가 어떤 존재라는 것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를 깊이 사랑하시는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아빠, 엄마, 나 사랑해?’라고 묻는 어리석은 하루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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