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사순 제5주간 월요일(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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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다니 13,1-9.15-17.19-30.33-62 요한 8,1-11

       

      모두에게 펼쳐진 주님의 자비

       

      적응의 속도를 넘어서는 변화의 속도를 체험하면서 따라가기 바쁜 세상의 흐름을 바라보게 된다. 비단 과학적이 발전의 모습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도덕성과 윤리성에 관계된 부분, 신앙에 대한 내적인 생활에서도 그것을 느낄 때가 있다.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이혼이나 과실 사건이 법적으로 걸렸을 때는 법률지식에 통달한 변호사보다 협상에 능한 변호사를 선택하는 편이 현명하다고 한다. 대개 이런 사건에는 복잡한 법률적 문제들이 수반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예인들을 대리하는 매니저들은 최대한의 이익을 도모하는 사람들이지 협상에 능통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정의롭게 재판을 하는 동시에 무엇으로 협상의 결과를 결정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늘 승리하는 다니엘과 예수님의 모습에서는 마음씨 착한 사람,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의 승리를 바라보게 된다. 자신이 하는 일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으로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례’가 곧 증거는 아니다.”라는 속담이 있다. 오늘 법정으로 끌려온 두 사람의 모습은 구체적인 사례로 고발된다. 그러나 그 증거에는 무엇인가 석연치 않는 구석들이 발견된다. 이 순간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누군가에 대한 고발의 내용이 아니라 무엇으로 인하여 고발하는가이다. 결국 예수님을 옭아매려는 수단이었고,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였음이 밝혀지게 된다. 결국 최종 결과에서 전혀 다른 결과와 판결이 내려진다. 그리고 그것은 한 사람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의 죄를 빛으로써 밝혀주시려는 보편적인 가르침이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법을 그들의 자부심으로 사용해왔다. 이 법은 결속력이 있는 백성들 사이에 생겨나는 이방인들 혹은 노예들의 융화를 돕기도 하였으며, 민족들 가운데 합법적인 토지의 주장을 변호하는 곳에 사용되었다. 모세에 의하여 산으로부터 내려온 법은 하느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를 결정하였다. 결국에 유대인들의 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디에 살든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도와주는 법이 되었다. 그래서 자국의 좋은 법률과 구조들을 증진하는 목적으로 그들은 이 법을 사용해왔기에 하느님과 함께 올바른 관계 안에 머무는 사람들을 돕는 단단한 안내서가 되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율법의 민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 법의 정의를 보존하기 위해 준비된 두 명의 존경받는 증인의 진술은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러나 그 순간 성령으로 움직인 다니엘의 말과 행위로 진실은 드러나게 되었다. 결국 하느님의 사랑은 법 규율의 한계와 그분께 신뢰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 역시 모세의 법의 또 다른 한계를 지적해주시면서, 더 큰 사랑의 법을 선포하신다. 이것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유효한 주님의 사랑의 법이며 자비의 법으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숙제는 ‘죄 없는 사람’의 심판과 더불어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누구도 고소하거나 비난하지 않으셨다. 그분이야 말로 이 말씀을 하실 수 있는 유일하면서 자비와 사랑의 법이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오늘 주님의 자비와 용서와 사랑에 힘입어 죄를 피하는 하루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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