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사순 제5주간 수요일(4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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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다니 3,14-20.91-92.95 요한 8,31-42

       

      주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행하는 삶

       

      자유라는 주제는 다양한 무게를 지니게 된다. 어떤 억압을 받는 사람들에게, 지금 제한적인 조건에 묶인 사람들에게, 자유를 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누군가의 보호 속에서 지내다가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행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무책임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등등.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신다. 여기서 진정한 자유는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이 우리 안에 머물고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그분의 가르침에 머무는 것인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예수님처럼 겸손하게 나 자신을 내려놓을 때, 주도권이 주님께 넘겨질 때 비로소 이 모든 것들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흔히 젊은 사람들끼리 야유회를 가서 게임을 하게 될 때, 진실게임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들이 묻고 싶어 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보게 된다면, 단순히 개인적인 취향이나 사실에 집착하게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은 사생아도 아니며,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우겨대는 모습처럼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무엇이 그들 안에 살아 있는지를 말할 수 있는 진리를 생각해 본다.

      또한 현대를 표현할 수 있는 전문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의 색다른 제안을 한다면, 그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제대로 평가하거나 바라보기 위해서는 개인당 10명 정도의 지도 감독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미국 초등학교에서 한 학생을 평가하고 대화하는 선생님이 3명 이상이 되듯이 말이다. 이때 비로소 제대로 한 사람을 바라보며, 그에게 필요한 적절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브카드네자르왕은 사드락, 메삭, 아벳 느고의 모습을 자신의 기준에서 평가하고 불속에 던졌지만 깜짝 놀랄 상황을 바라보며 자문관들에게 묻게 된다. 그리고는 자신의 신들이 아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의 하느님을 찬미하게 된다. 자신의 명령을 어기고 다른 신이 아닌 자신들의 하느님의 믿고 몸을 바친 종들을 구해내시는 참된 자유의 하느님을, 진리의 하느님을 고백하게 된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모습을 통하여 참된 진리를 깨닫고 고백할 수 있는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더라도 주님을 따른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생각해본다. 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세상에 얽매이지 않고, 영원한 생명이신 하느님께 근거하기 때문이다. 참된 진리에 모든 것을 두고 살아가기 때문에 신앙은 맹신이 아닌, 지성적이고, 감성적이며, 전인적인 증거의 삶이 되는 것이다. 이 때 비로소 주님의 찬미와 영광을 받으시는 동시에 우리는 주님의 뜻 속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주님의 자녀로서 자유로운 사람, 참된 진리의 빛을 증거하는 하루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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