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사순 제5주간 금요일(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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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예레 20,10-13 요한 10,31-42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이유

       

      코미디 프로그램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여러분은 복권이 사람의 난폭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보시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리포터가 옆에서 복권 일등에 당첨된 사람의 복권을 불로 태워버린 것이다. 그러자 그 사람은 ‘자신의 복권을 내 놓으라’며 멱살을 잡고 폭언을 하게 된다. 이 때 ‘이 사람의 증상에서 보이듯이, 한 낱 종이에 불과한 복권을 신격화하고, 자신의 삶의 해방구로 인격화하여 정신적인 장애를 겪고 있는 이 사람은 복권으로 인하여 난폭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결말을 맺는 상황을 보여주었다. 억측과 괴변으로 한 사람의 삶을 매도하는 장면을 통하여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자아내게 하였다. 우리의 생활상을 풍자해서 표현해주고 있는 것 같아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서 일곱 가지만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이 복음서를 쓴 목적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20,30-31)라고 밝히고 있다. 오늘 복음에서도 몇몇 유다인들은 분명하게 예수님께서 이루신 선한 일들의 증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들과 함께 흥분하며 변호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나타난다. 그들이 갖게 된 분노는 당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자신들의 신앙에 대한 불경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서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셨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분은 요르단 강 건너편, 요한이 전에 세례를 주던 곳으로 물러가 머무셨다고 말하고 있다. 공생활을 시작하기에 앞서 하느님의 의로움을 실행했던 그 곳으로 물러가신 것이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왜 군중들의 박해를 받게 되었는가? 그 역시 자신들에게 다가온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하느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분에게서 전해지는 뜻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뜻이 세상 사람들에게 왜 거부감을 일으켜야 했던 것일까? 그것은 자신들의 뜻에 어울리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야 하는 어려움과 불편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자신들이 알고 있던 계명을 실천으로 증거 하면서 자신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중대한 이유였다. 우리를 괴롭히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전해주려고 오신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예수님이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변화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바라신 적이 있는가? 예수님께서 바라신 것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깨닫기를 바라신 것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고 아버지께 청하신 분일뿐이다. 예수님께서 청하시는 모든 것이든 아버지께서 들어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우리를 위해 찾아오신 예수님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그분께 신앙을 고백하며 의지하는 오늘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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