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 예레 11,18-20 복음 : 요한 7,40-53
사로잡힌 사람들
예수님과 예레미야의 공통점은 수난과 고통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며, 차이점은 예레미야는 복수를 보게 해달라고 표현했고 예수님은 용서를 청하였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저 엄마의 강력한 권유에 따라 다니게 되었고, 재미가 있었고, 그것이 다입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이야말로 참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종교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신다는 것을 입으로는 고백하지만 믿음으로 고백하는 순간까지 도달해보려 합니다.
사실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렴풋하게 알고 있습니다. 저도 확실히 아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러 오신 분이라는 것은 알겠습니다.
오히려 내가 무엇엔가 사로잡히지 않고 자유롭게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해봅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도 어떤 틀 속에 규격화 된 모습으로 주님을 만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옆 본당, 옆집에서 그리스도가 나오면 안 됩니까? 다른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 못마땅합니까? 나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기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전혀 모르고 받은 것이지만 이제는 조금 알겠습니다. 예전의 동기도 대단하지 않았거니와 지금의 모습도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도 주님께 대한 믿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니 더욱 구체화 되어 갑니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자유롭게 만나시는 주님의 손길임을 왜 몰랐을까요?
다(多) 민족이 살아가는 이곳에서 소수라는 말과 다수라는 말의 의미가 필요한 것은 왜일까요? 모두가 이방인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