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사순 제4주간 금요일(4월 8일)

Viewing 1 post (of 1 total)
  • Author
    Posts
  • #1627
    정하상성당

      지혜 2,1.12-22 요한 7,1-2.10.25-30

       

      시험에 빠진 우리를 의로운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

       

      사람들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여러 가지 체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지성과 의지와 활동을 하게 된다. 따라서 같은 내용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되고 때로는 정 반대의 의미로 비춰질 때가 있다. ‘위대한 탄생’이라는 프로그램과 ‘슈퍼스타 K’라는 프로그램을 비교하는 것을 보았다. 연령별로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의 차이와 내용이 보여 졌다. 세대 간의 격차를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세상의 흐름에 대해서 조금은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다. 무엇이 서로의 눈과 마음을 멀게 하고, 닫히게 하며, 어둡게 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것은 자신에 대한 극대화가 아닐까?

      거룩한 독서를 통한 기도와 말씀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한 피정을 마쳤다. 그 속에서 우리가 빠질 수 있는 유혹들을 바라보았으며, 지금부터는 꾸준히 말씀으로 다가오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하게 될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우리는 모든 말씀을 ‘아는 것’이 아니라 ‘맡기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성령의 작용으로 이루어진 주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선과 악 사이에는 평화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바라보게 된다.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하느님과 선의 모습의 승리를 볼 수 있지만, 그 때까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부정함이 정의를 혼란시키고 어려운 순간들이 종종 발견되기 때문이다. 또한 불의한 사람들은 자신들과 하느님 사이의 차이점을 알지만 자신들이 계속 우세하다고 여기게 된다.

      이제 하느님의 적대자들은 한 사람을 모욕하고 고통으로 시험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온유함과 인내를 시험함으로써 하느님을 시험하는 사람들로 나타난다. 수치스러운 죽음까지 생각하면서 하느님을 모욕하기에 이른다.

      이 모습은 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상황에로 인도한다. 예수님은 초막절에 유다인들의 거리를 다니신다. 그분을 죽이려는 유다인들 때문에 주님은 비밀스럽게 다니신다. 그러나 그분이 공개적으로 연설하기 시작하자, 그분을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아닐까라는, 그분께 대한 의문이 드러난다. 그런데 그분의 적대자들은 그분의 가르침과 행위가 아니라 그분이 그들이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을 거부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분이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오셨다고 말씀해주신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예수님께 적의를 품고 체포하려고 한다.

      예수님께서 부활절 아침에 죽음에서 부활하신 뒤에야 모든 사람들은 세상의 어떤 것도 하느님의 힘을 능가하는 것이 없으며 그분께 의지하고 희망을 두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아직도 광명을 느끼기에는 미약한 존재들이며 유혹에 빠져 살고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 곧 모든 문제와 시간과 죄들도 이기시고 구원하시는, 을 위해 오셨다고 말씀해 주신다. 우리는 우리의 모습 속에 넘어지지 않고 의로우신 주님의 모습에 지속적으로 남아 있음으로써, 시험에 빠지는 순간에라도 주님의 얼굴을 마주하며 의롭고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살아보자.

    Viewing 1 post (of 1 total)
    • You must be logged in to reply to this top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