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사순 제3주간 수요일(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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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신명 4,1.5-9 마태 5,17-19

       

      하느님의 법의 충만을 위해 오신 예수님

       

      하느님의 법을 따른다고 할 때, 그 법의 내용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우리는 쉽게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적용에 있어서는 상당히 신중하고 다양하며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이 그들이 살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의 법을 따를 때 그들의 삶의 모습을 지혜롭고 슬기로운 백성으로 드러나게 될 것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자신들의 삶에서 이 모든 가르침을 잃어버리지 않게 대대손손 보도 들은 것을 가르치라고 독려하고 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법을 완성하러 오셨지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사랑으로부터 생겨난 하느님의 법은 그분이 당신의 백성들을 사랑하신다는 증거로 구원의 역사를 통해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였다. 이 사랑은 예수님의 육화 신비로써 다가왔고, 하느님의 법에 순종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서 이곳에 와 있는 것이다. 주님께 대한 사람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모습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타인의 짐을 나눠질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신 사랑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존재하는 가난과 억압에 대하여 조금 더 배우도록 초대한다. 누가 진정으로 우리 주변에서 가난하고 집 없이 헐벗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는 타인의 요구를 바라볼 수 있는 연습을 해야 한다. 또는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친절한 말이나 사랑스런 행동으로 편안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과 상황을 찾아야 한다. 예전에 원로 신부님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는 ‘누군가를 도와줄 때 그에게 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고 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이처럼 사랑에는 연구와 지속적인 배려가 필요한 것이다.

      가족 구성원 안에서의 사랑은 어떠한가? 시시한 말다툼이나 소원(소외)된 일은 없는가? 그런데 이런 순간에 사랑은 어려움들을 변화시키거나 불화의 끝의 단단함을 부드럽게 하도록 사용되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사랑에는 끝이 없다. 그리고 쉼도 없다고 했다. 이렇게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사랑의 에너지가 나오고, 희망과 기쁨이 솟아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은 실수하게 마련이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행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의 살아간다면 분노는 사라지고, 화해와 일치가 자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느님 안에서 이루시려고 오신 예수님의 뜻이었음을 바라보게 된다. 우리가 이웃에게 관심을 돌릴 수 있을 때, 곧 나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때, 주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 오늘 하느님의 계명이고, 우리가 영원히 하느님 나라에서 그분과 함께 살아갈 희망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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