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사순 제1주간 월요일(3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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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레위 19,1-2.11-18 마태 25,31-46

       

      정의를 추고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예수님의 제자

       

      흔히 알지 못하는 것, 처음 대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정체가 밝혀지거나 어느 정도 알게 되면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온갖 상상과 두려움에 쫓기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자기 내면에 숨어 있는 악한 존재를 체험하게 될 수 있다. 그 모습을 오늘 레위기를 통하여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안 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중점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으로서 어떤 선택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법규로써 자리매김 하고 있다.

      가난하고 아프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 삶에 부분을 살펴본다. 우리의 고통 – 육신적이든, 정신적이든, 영적이든 – 은 어떠한가? 이지 지나쳐버린 순간들일 수도 있고, 지금 그 상황 속에 남겨질 수도 있다. 혹은 미구에 다가올 것에 대한 걱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손톱을 파고 들어오는 덧난 상처, 편두통, 치통, 신경염, 류마티즘, 각종 암, 시신경 장애, 어지럼증, 등등. 이런 많은 고통과 불행들을 어떻게 견뎌 냈을까? 아마도 고통이 없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몰랐기 때문에 견디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고통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되고,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에게 필요한 도움의 손길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우리 각자의 신체적, 정신적 질병 속에서도 도움을 받고, 이해를 받기를 원한다면, 우리 주변에 이웃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감정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스트레스와 정신적 장애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손님은 무조건 왕이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종의 신분으로 낮추어야하는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대한 소고였다. 말도 안 되는 억측과 자기중심적인 세속의 흐름 속에서, 직업에 대한 부담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 대한 올바른 대우를 준비하고 이용하는 사람들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주는 것이 정의를 실천하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모습이 아닐까?

      사회적 책임감이라는 무게 있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직 우리의 시각과 마음을 새롭게 조정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여기에 예수님께서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행위에서 더 나아가 타인에게 필요한 것들에 동참하려는 모습을 말씀해주신다. 그리고 그것이 하늘나라에서 심판을 받을 때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을 멀리 살펴볼 것이 아니라 우리 가정에서부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나의 가족 구성원들에게 충실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내가 해야 할 의무는 물론 온 정성을 다하여 사랑으로 가족을 대하고 있는가? 매일 이 충실한 책임감을 키워나가면서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가? 한쪽에 치우침 없이 일관적인 모습으로, 공정한 방법으로 나 자신과 가족을 대하고 있는가? 이것부터 자리를 잡는다면 주변 이웃에 대한 준비도 자동적으로 되지 않을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을 가장 가까운 그래서 가장 소홀할 수 있고, 상처를 줄 수 있는 가족에서 실천해보는 하루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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