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 28-38 요한 17,11-19
마지막 인사
사람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으로 살아간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새롭게 다가오신 수녀님들이 더욱 반갑고 기쁘게 느껴진다.
그런데 오늘은 바오로 사도나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헤어짐에 대한 모습을 생각해보게 된다. 끈끈한 정과 사랑과 관심 그리고 정성이 담겨져 있었을 공동체생활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는 표현을 사용했나보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3년동안 제자들과 함께 다니시면서 이 고을 저 고을에 복음을 선포하셨다. 또한 바오로 사도는 3년 동안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 새로운 믿는이들의 공동체를 만나게 되거나 복음화 시켰다. 바로 그 때마다 하느님께서는 특별한 기적들을 통하여 바오로의 복음 선포가 ‘영향력과 힘을 지니고’ 전파되게 이끌어 주신 것이다.
아무튼 오늘 중요한 사건은 에페소의 원로들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에 있기보다는 무엇때문에 그것을 행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바로 “하느님의 교회 곧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얻으신 교회”를 돌보라는 것이다. 더욱이 ‘약한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간곡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예외없이 약한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약자 우선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편향되지 않는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준다는 표현에서처럼 타인의 신발을 신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자신 안에서의 상상일 수도 있다. “내가 만약 그런 입장이라면 나는 좀더 잘 할 수 있을텐데.”라는 식으로.
예수님이나 바오로 사도의 모습을 통해서 느껴지는 것은 마지막 인사를 통하여 그분들이 한결같이 살아온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마지막 인사는 내가 지금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것을 되새겨본다. 아울러 우리 모두가 하느님께 맡겨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바로 그분께서 우리를 굳건하게 세워주시고 복을 주시는 분임을 믿고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로써 우리에게 주어질 상속 재산인 구원을 차지하게끔 이끌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 마지막 인사를 하게 된다면 나는 어떤 모습을 남기게 될 것인가를 준비해보자.